코끼리 수차례 “탕탕”…美총기협회 부회장 사냥 영상 논란

입력 2021-05-01 00:07
미국총기협회 웨인 라피에어 부회장이 코끼리 사냥을 하고있는 모습. 라피에어 부회장은 총격으로 쓰러진 코끼리를 향해 다시 총을 쐈다. 뉴요커 보도영상 캡쳐

미국총기협회(NRA) 부회장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사냥하던 당시의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부인과 함께 사냥에 나선 부회장은 서툰 사냥 실력 탓에 몇 차례나 코끼리에게 총격을 가했고, 이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 외신에 보도되며 미국 사회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미 주간지 뉴요커와 총기사건을 전문 보도하는 비영리 언론 더 트레이스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웨인 라피에어 NRA 부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013년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코끼리 사냥을 갔을 당시 영상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냥 영상은 당초 NRA가 후원하는 TV 시리즈 “Under Wild Skies” 제작진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프로그램의 핵심 기부자들인 사냥꾼들을 대상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총기 관련 여론을 악화해 홍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실제 공개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요커가 보도한 영상에 따르면 라피에어 부회장은 아프리카 숲코끼리를 추적하다 전문 사냥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총을 발사한다. 당시 가이드는 “조금 더 기다리라”고 지시했지만 귀마개를 끼고 있던 라피에어는 이 말을 듣지 못하고 성급하게 총을 쏴 코끼리를 한번에 사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가이드는 쓰러진 코끼리에게 다가간 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라피에어에게 귀밑 급소를 사격해 숨통을 끊으라고 알린다. 그러나 라피에어는 세 차례나 코끼리에게 총격을 가하고도 급소를 맞추지 못했다.

이에 라피에어 부회장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NRA 고위급 간부 토니 마크리스가 급소를 사격했고 코끼리는 그때에서야 숨을 거뒀다.

총에 맞은 코끼리를 확인하러 가는 가이드와 웨인 라피에어 부회장의 아내 수잔 라피에어. 뉴요커 보도영상 캡쳐

영상에는 라피에어 부회장의 부인인 수잔 라피에어의 사냥 모습도 담겼다. 수잔은 총으로 코끼리를 쏴 죽인 뒤 죽은 코끼리의 꼬리를 사냥 칼로 잘라내 이를 높이 치켜들고 “승리했다”며 자랑스러운 듯 포즈를 취했다.

수잔은 자신이 사냥한 코끼리가 몇살쯤 되냐고 묻고 가이드가 “50살은 족히 넘겼을 것”이라고 답하자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나이가 찬 늙은 거물(old bull)을 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말 멋진 경험”이라고 말한 후 그의 남편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라피에어 부회장은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죽은 코끼리를 확인하는 수잔 라피에어. 뉴요커 보도영상 캡쳐

최근 반복된 총격 사건으로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알려진 이번 영상은 미국 내에서 큰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사냥이 일어난 시점이 지난 2012년 미국 샌디후크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26명이 숨진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였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 높다.

그러나 NRA 측은 당시 사냥이 전면 허가된 것이며 규정과 규칙을 철저히 지킨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코끼리 사냥이 “보츠와나 주민에게 도움이 되고 경제와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라피에어가 사냥한 아프리카 숲코끼리는 사냥이 이뤄졌던 2013년에는 멸종위기종이 아니었으나 올해 초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뉴오커는 라피에어 부회장이 30여 년 간 총기 보유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자 자유로운 권리’라고 포장해 NRA에 기금을 모금하도록 주도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그는 총기를 잘 다루지 못하고 그가 만든 폭력적인 정치 환경을 두려워 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꼬집었다.

또한 라피에어는 그동안 총기 규제론을 반박할 때 “총을 든 악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총을 든 선인(善人)뿐이다”라는 주장해 왔는데 이번 영상으로 타격을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