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교사들에 대한 백신 접종이 5월 이뤄질 예정이다. 4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보건교사 등과 함께 접종 예정이었다가 미뤄진 백신 접종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지만, 보육현장은 걱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접종 후 발열 등 증상시 대응방법과 관련 현실적 대안이 여전히 명확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접종 후 발열 등 증상이 있다면 백신 휴가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매일 같이 아이들 보육을 전담해야 하는 보육교사 근무 특성상 누군가 백신 휴가를 쓰려면 대체 인력을 필요로 한다. 대체 인력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접종 후 증상이 있더라도 쉽게 백신 휴가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보육교사들의 우려다.
보육교사들의 불안감과 불신은 지난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겪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보육교사들은 ‘긴급 돌봄’이라는 사회적 요구 속에 맨몸으로 보육 현장에 내몰려 있다는 답답함을 호소해왔다. 정부 방침으로 어린이집은 공식 휴원하지만, 긴급돌봄을 위해 보육교사는 정상 출근하는 이원적인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방역 부담과 책임은 보육교사의 몫이었다. 4월부터는 코로나19 선제검사 의무 대상으로 지정돼 매달 한 번씩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에도 ‘보육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매일 출근하며 위험을 감당해 온 보육교사를 이젠 원내 감염원처럼 보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개선책은 찾아지지 않은 상태다.
“백신 휴가, 쓸 수 있을 거라 기대 안 한다”
보건복지부 양성일 1차관은 지난 4월 17일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현재 실시 중인 월 1회 선제검사와 5월부터 전체 보육 교직원에 확대될 예방접종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한다”면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여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어린이집의 특수성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어린이집 내 보육 교직원의 근무조정을 통해 보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접종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30일 전했다.
그러나 보육교사들은 접종 후 상황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A 보육교사는 “평일 중에 백신을 접종하면 그 시간 동안 또 돌봄 공백이 생긴다. 한 명의 교사가 백신을 맞는 동안 다른 교사가 정원 이상의 아이들을 보육하는 등 버거운 상황이 생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백신 휴가 사용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백신 휴가는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이 있을 시 신청하면 이용할 수 있다. 접종 후 10~12시간 내 이상 반응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접종 다음 날부터 최대 이틀까지 휴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A 보육교사는 “개인마다 백신 접종 후 발현 시기와 증상이 다를 텐데 이상 반응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장 아프게 된다면 대체교사가 올 때까지 발생하는 보육 공백은 어떻게 대처하나”라고 지적했다.
백신 휴가에는 강제성이 없다. 보건복지부 안내 지침에서도 휴가 사용에 관한 사항은 ‘적극 권고’ 수준에 그친다. 보육 공백 우려, 백신 휴가의 비강제성 등 때문에 백신 접종 후 이상증상이 있어도 휴가를 쓰기 힘들 것 같다는 게 대부분 보육교사의 의견이다.
앞서 간호사 등 의료인력에 대한 백신 접종 때도 같은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간호사회는 당시 백신 휴가와 관련 “규모 있는 국공립병원이나 노동조합이 있는 병원도 코로나19 유급휴가를 사용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국내 병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병원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보육지부는 “백신 휴가를 유급으로 사용하라는 권고는 (어린이집) 원장이 백신 휴가를 선택할 수 있게 해 현장에선 더욱 지켜지기 어렵다”며 “권고가 아닌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보육교사가 한꺼번에 백신 접종을 하게 된다면 인력 지원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 백신 접종 시 대체 인력 문제뿐 아니라 효율적인 접종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 애로사항 듣는다더니…차별적 선제검사에 ‘한숨’
보육교사들이 토로하는 답답함은 이뿐만은 아니다. ‘보육교사 월 1회 코로나19 선제 검사’ 방침이 대표적이다.지난 3월 30일 정부 방침 발표 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반대 청원은 “어린이집은 보육교사만 있는 장소가 아니라 기본 20명을 시작으로 몇백 명까지 있는 장소”라면서 보육교사만 검사 대상으로 보는 조치가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원 등에도 불구하고 전국 30만 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선제검사는 4월부터 시작됐다. 이에 보육교사들은 어린이집 내 출입하는 사람들이 보육교사뿐이 아닌데, 왜 교사만 검사 대상으로 보는지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학교 등 다른 교사들에 대해서는 같은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A 보육교사는 “보육교사에게만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어린이집이 안전해지나”고 반문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김현진 보육교사는 “유치원 교사, 초중고 교사 등 타 교육자 집단은 코로나19 선제검사를 받지 않는다. 보육교사에게만 의무 기준을 적용하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 보육교사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면 영유아의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담당자들도 선제검사를 받는 게 타당하지 않나”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영유아 특성상 마스크 착용이 어렵고 어린이집 내에서 거리 두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선제검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와 협의해 전체 보육 교직원을 대상으로 선제검사를 하기로 했다”면서도 유치원 교사 등은 검사를 받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방역 당국의 검사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대본 및 중수본에서 검토돼야 할 사항”이라고만 답했다.
또 보육교사 외 어린이집에 출입하는 이들의 검사 의무성에 대해서는 “학부모 등 보호자를 대상으로 아동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보일 시 등원 중단 및 즉시 검사를 받도록 가정통신문, 카드 뉴스 등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휴원? 보육교사들 70%이상 출근해”
의무 선제 검사 외에도 보육교사들은 코로나19 확산 속 더 많은 부담을 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당시 정부는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을 내렸지만, 돌봄 공백 우려가 커지면서 긴급보육실시 명령도 동시에 내렸다. 긴급보육 시 보육 교직원은 정상 출근 원칙 하에 어린이집 사정에 따라 업무 및 근무시간 조정이 가능하다. 민주노총 보육지부에 따르면 당시 긴급보육 기간 보육교사의 약 70% 이상이 등원했다.
원내 방역 부담은 오롯이 보육교사의 몫이 됐다. A 보육교사는 “아이들 보육은 물론 청소, 행사준비 그리고 각종 서류작성 등 제대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없는 실정에 보육교사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보육지부는 “정부에서 보육 현장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방역 책임을 오롯이 보육교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현장의 문제점을 꼼꼼히 파악 후 해결방안까지 검토해서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전했다.
노유림 인턴기자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