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① 타이페이 공항서 벌어진 김한솔 구출 작전 ‘36시간’
② 첩보영화 같은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사건의 전모
③ 이라크 참전·MBA학위 ‘한국계’ 미국인, 자유조선 택했던 이유
④ 북한 암살 우려에다 스페인 송환 재판…그가 털어 놓는 심경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1)은 지금 스페인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와 자유조선 회원들은 2019년 2월 22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다. 스페인 사법당국은 이 사건과 관련해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모두 6개다. 불법 진입·협박·상해·불법 감금·강도·범죄조직 결성 혐의다.
스페인 사법당국과 미국 검찰은 “크리스토퍼 안을 포함해 범죄조직인 자유조선 회원 10명이 북한대사관에 불법으로 진입해 대사관 직원을 협박하고, 때렸으며, 불법 감금했고, 컴퓨터 등 물품을 훔쳤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한 문장에 크리스토퍼 안의 6개 혐의가 다 들어가 있다.
반면, 크리스토퍼 안과 그의 변호인단은 “모든 주장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맞받아치는 상황이다.
크리스토퍼 안은 지금 미국 법정에서 스페인 송환 여부를 다투는 재판을 받고 있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 따르면, 스페인 법정에서 6개 혐의에 대해 각각 법정 최고형을 받을 경우 그는 최대 2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크리스토퍼 안을 돕기 위해 모두 한국계·한국 국적인 3명의 미국 변호사가 무료 변론에 나섰다. 미국의 한 북한 전문가는 “크리스토퍼 안의 변호사인들은 자유조선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라며 “그의 스페인 송환이 부당하다는 믿음으로 무료 변론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 법정에 설 경우 불리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크리스토퍼 안의 변호인단은 “스페인 사법당국이 수사 과정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일방적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스페인의 수사 과정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진술이 스페인 정부 측의 통역 없이 모두 북한대사관 최선임자에 의해 통역됐다”고 비판했다.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으로 송환될 경우 북한에 의한 납치·암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도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크리스토퍼 안에게 북한에 의한 암살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사실을 미국 법원은 이미 인정한 상태다.
크리스토퍼 안의 변호사들은 로스앤젤레스(LA)의 최상급 로펌 소속이다. 그러나 스페인 송환을 요구하는 스페인 사법당국·미국 검찰의 칼끝도 날카롭다. 1심 재판 결과를 쉽게 예단하지 못하는 이유다.
크리스토퍼 안은 피살된 북한의 김정남 아들 김한솔 구출 작전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 등 자유조선이 주도한 작전에 참여했다. 이들 사건에 대해 첩보 영화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스페인 송환 위기에 빠진 그는 “이건 영화가 아니다. 내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국민일보가 지난 20일(현지시간) LA에서 크리스토퍼 안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스페인 송환 재판, ‘보여주기용 쇼’ 아니다”
-스페인 송환 가능성을 실제로 걱정하는가.
“당연히 걱정한다. 한국 국민들이 이것만은 꼭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내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법정 싸움도 다 보여주기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 정부는 정말 나를 스페인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 내가 법정에 나갈 때 마다 반대편에 있는 미국 검사가 ‘크리스토퍼 안을 감옥에 가두고, 스페인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번 재판은 절대 헐리우드 액션이 아니며, ‘보여주기용 쇼’가 아니다.”
-당신을 스페인으로 보내려는 미국 정부에 대해 불만은 없는가.
“나는 분노할 마음의 공간조차 없다. 나의 모든 신경은 지금 우리 가족의 안전과 생계에 집중돼 있다. 한국에도 친척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진 이후 모든 연락을 끊었다. 혹시나 친척들에까지 피해가 갈까 하는 걱정하는 때문이다.”
-현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인터뷰 내내 배석했던 변호사가 크리스토퍼 안의 동의를 얻어 대신 답했다) 코로나19로 재판이 많이 연기됐다. 5월 25일 최종 심리가 열린다. 그 날 1심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늦어도 2∼3주 안에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항소 절차와 관련해 앞으로 연방대법원을 포함해 앞으로 세 번의 기회가 더 있다. 긴 싸움이 될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송환에 반대한다’는 결정만 내리면 재판이 그냥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국무부로부터 어떠한 연락이 오지 않은 상태다.
우리(변호인단)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미국의 송환법은 송환 기준이 정말 낮다는 것이다. 송환을 요구하는 다른 정부에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 미국 법원이나 국무부, 다른 미국 정부 기관들을 움직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의 온기, 법정까지 다가왔으면”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는가.
“(다시 크리스토퍼 안이 대답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한국 국민들에게 ‘내가 왜 그런 작전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나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강하다. 집에서도 어머니, 외할머니와 한국말을 쓴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이 참혹한 상황에 빠진 북한 주민들을 먼저 도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왜 북한 주민들을 도왔는지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철저하게 혼자다. 미국 정부도, FBI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한국 국민들의 온기가 바다를 건너서 내가 서 있을 법정에까지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구금됐다가 150만 달러(16억 7000만원)라는 거액을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보석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현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어머니 집과 장인·장모 집, 그리고 내 남동생 집 세 채를 담보로 걸었다(그의 부부는 어머니(71)와 외할머니(99)를 모시고 어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친구들이 개인 신용으로 담보를 걸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장인·장모도 ‘왜 그런 일을 했느냐’ 같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만, 아내와 말다툼을 한 적은 있다. 아내도,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 빠진 것에 대해 내게 뭐라고 한 적은 있다.”
“나는 ‘갱스터’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자유조선 임무에 참여했을 때, 북한 주민들을 돕는다는 보람을 느꼈는가. 지금 상황에서 후회나 안타까움은 없나.
“나는 자유조선이라는 존재를 통해 희망을 발견한 북한 주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도왔을 뿐이다. 나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줬던 일들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쁜 일이 발생했다.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나는 어머니와 앞을 보지 못하는 외할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완화된 가택연금 중이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다. 풀타임 직업을 갖는 데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면접 때 나를 잘 봤던 경영진도 내 백그라운드를 체크한 뒤 퇴짜를 놓는 일이 계속됐다.
구글로 검색하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마치 ‘갱스터(Gangster·폭력배)’나 테러리스트처럼 나온다. 내가 봐도 갱스터 같은 사진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갱스터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나는 내 처와 함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각종 청구서를 갚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보석 조건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고, 집으로부터 15마일(24㎞)을 벗어날 수 없다. 처음 전자발찌를 봤을 때는 ‘내 인생이 이렇게 됐구나’를 상징하는 물건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전자발찌를 볼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스펀지밥’ 캐릭터의 스티커 사진을 붙였다. 그 뒤로는 마음이 좀 나아졌다.
나는 지금 e커머스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고 있다. 파트타임 일을 구하는 데는 백그라운드 체크가 덜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월급은 30% 정도다.”
“나는 한국 사람이면서 미국 사람”
-만약 스페인 송환 재판에서 승리해 자유의 몸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활동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얼굴이 알려져 북한인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인권에 정말 관심이 많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구치소에서 90일 동안 복역하다가 보석으로 나왔다. 미국 구치소는 끔찍했다.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시설에 갇혀 있었다. 내가 만약 자유의 몸이 된다면 미국 교정시설 개혁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다.”
-당신은 한국인과 미국인 중 어느 쪽의 정체성이 강한가.
“나는 한국 사람이면서 미국 사람이다. 내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내가 어려움에 빠진 북한 주민들을 도우러 갈 때, 북한 주민들은 나를 완벽히 같은 동포로 대했다. 그 때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반면, 내가 이라크전쟁에 미국 해병대원으로 파병됐을 때는 이라크 사람들이 나를 미군으로 대했다. 그 때는 미국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이 스포츠 경기를 한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는가.
“(그는 7시간에 걸쳤던 인터뷰 중 처음 웃었다.) 오늘 질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같다. 양팀 모두 선전하는 ‘굿 게임’을 바란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크리스토퍼 안 첫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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