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홍승희가 세상의 덕출들·은호들에게 보내는 편지

입력 2021-04-30 06:30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심은호역을 맡은 배우 홍승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언젠가는 덕출 할아버지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 흔들려도 좋으니까 그 순간이 올 거라는 걸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24세의 나이로 데뷔한 지 3년 만에 첫 주연 자리에 오른 배우 홍승희는 29일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7일 종영한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그가 맡은 심은호역은 MZ세대(198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태어난 Z세대의 합성어)의 전형을 그리는 인물이다.

원작 웹툰에선 70세에 발레를 도전하는 할아버지 심덕출(박인환)의 조력자로만 나오지만, 드라마에선 덕출 덕분에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인물로 두드러진다. 홍승희는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은호를 만나보면서 느낀 건, 내 또래와 은호 또래인 청춘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느꼈다”며 “은호를 보면서 응원과 위로를 느끼셨으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심은호역을 맡은 배우 홍승희. tvN제공

홍승희는 자기의 무명시절을 떠올리면서 은호에게 더 몰입했다. 극 중 은호는 부모의 말을 따라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하고 대기업 취업을 위해 인턴을 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수를 만들어내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은호처럼 힘든 고비가 많아서 그때마다 일기를 적었고,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며 “진짜로 바랐던 오디션에서 떨어진 경험들이 많아서 뭘 해도 안 됐던 시기가 있었다. 뭐든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서만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홍승희가 배우의 길을 선택하자 은호가 아버지 성산과의 갈등에 힘들어하는 상황을 그대로 겪었다. 그는 “아버지가 제가 일할 때 걱정이 아주 많으셨다. 극 중 성산 아빠처럼 대놓고 뭐라고는 안 하고 ‘힘들 걸 한다는 데 안 말리고 뭐했냐’며 엄마를 들들 볶았다”면서도 “요즘에는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만 열심히 하신다”고 했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역을 맡은 배우 박인환. tvN제공

이럴 때마다 스스로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세상의 ‘덕출’들 덕분이다. 은호가 할아버지 덕출이 어렸을 때 꿈꿨던 발레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자기의 꿈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홍승희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덕출’을 찾는다. 그는 “만나는 분들이 마다 특유의 상황에서 말하는 방법이나 고유의 매력이 있다.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런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다고 떠올린다”며 “나랑은 안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더 좋은 모습이 있구나 깨닫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미로 등산을 가신다든지, 댄스스포츠를 나이 들어서 배우시는 분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본다”며 “또 친구분들과 모임을 할 때 누군가의 엄마·아빠가 아닌 본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홍승희가 배우라는 꿈을 선택한 이유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소소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즐거워서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이 들었다”며 “처음 은호가 삼촌에게 라디오 작가를 소개받고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작하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즐겁고 보람차다고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온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 어려운 순간을 버틸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더라”라며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심은호역을 맡은 배우 홍승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제 꽤 단단해진 그에겐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다잡는 게 습관이 됐다. 홍승희는 “스스로의 일에 의구심이 들 때마다 ‘너 자신을 스스로 못 믿으면 누가 너를 믿고 써주고 싶겠냐’는 말을 마음속에 되뇐다”고 한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말들은 자신의 연료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가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여기까지 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말해 큰 힘을 얻었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은호가 덕출로 꿈을 배우듯, 아직 세상엔 발레를 시작해보지 못한 덕출이 너무 많다. 홍승희는 그들을 향해 “어느 순간부터 자기보다 다른 것들을 중요시하면서 살아오셨던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건 제 엄마·아빠한테 하는 말인데, ‘앞에 산책하러 자주 나가봐. 뭐라도 해봐’라고 한다”며 “본인 이름 석 자로 진짜 행복하다고 느끼실만한 일들에 도전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