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간호 끝 딸 살해…‘돌봄 감옥’서 번아웃된 엄마의 비극

입력 2021-04-29 17:27
국민일보DB

오랜 시간 정신질환을 앓던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여성이 2심에서 1심보다 낮은 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여성이 딸을 돌보는 과정에서 겪은 우울증을 고려해 감형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최수환 최성보 정현미)는 29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66)에게 징역 4년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월 서울의 자택에서 자신의 딸 B씨(당시 36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가 조현병과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은 뒤 A씨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23년간 B씨를 돌봤다. 그러나 B씨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하자 더는 돌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비극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A씨가 이른바 ‘번아웃(탈진) 증후군’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B씨의 병원 진료기록 일부에도 부모의 번아웃 증후군 관련 내용이 기재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오랜 기간 정신질환을 앓던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폈다고 해도 독자적인 인격체인 자녀의 생명에 관해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1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2심은 “진료기록에 번아웃 증후군 관련 내용이 기재된 사실은 인정되지만, 범행 당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까지 이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피고인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도 질타했다.

다만 A씨가 B씨의 치료와 보호에 전념하던 23년간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은 점, 자신과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겨질 피해자가 사회적 냉대 속에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이 같은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해 감형한다고 밝혔다.

또 유족이자 A씨의 남편이 선처를 호소하고 A씨가 앞으로 자녀를 살해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김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