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간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당시 상황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비극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그때 광주에서 아픈 시간을 겪어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의 ‘지금’을 이야기한다.
대리기사 오채근(안성기)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오늘도 괴로움 속에 살고 있다. 오채근은 죽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살아가는 5·18 가해자에게 복수를 준비한다.
대리기사 오채근을 부른 손님 박기준(박근형)은 5·18 당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책임자이지만 호의호식하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오채근이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편히 잘 살 수 있었는지”라고 말하자 박기준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그때 일은 다 역사가 평가해줄거야”라고 답한다.
오채근이 자주 가는 ‘한강식당’에서 일하는 진희(윤유선)는 5·18 당시 아내를 잃고 정신이상을 겪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꿋꿋이 삶을 살아낸다. 오채근은 한강식당 화장실 벽에서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발견한다.
영화에선 실제 광주 시민들이 배우로 출연해 연기를 펼친다. 5·18 당시 실종된 아들을 아직도 찾아다니는 할아버지, 남편이 5·18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다가 자살해 실어증에 걸린 ‘금자’, 식당 주인 아주머니 등은 광주 시민들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흡사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연기는 담담해서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영화 속 사건들은 수많은 증언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됐고, 영화 촬영의 80%는 광주에서 이뤄졌다. 영화 속에선 서울에 있는 장소로 나오지만 한강식당, 진희의 아버지가 있는 병원 등은 실제로 모두 광주에 있다.
1990년 5·18을 소재로 한 영화 ‘부활의 노래’로 데뷔한 이정국 감독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 다시 한 번 5·18을 그려냈다. 지금의 관점에서 그 당시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서다.
28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른 기자간담회에서 이 감독은 “‘왜 현대사에서 악행을 저질렀던 책임자들은 반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영화를 시작했다”면서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미래로 가면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점을 되짚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연 배우로 안성기를 선택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큰 배우를 캐스팅하기엔 예산이 많지 않아 사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면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대본을 보냈는데 바로 다음날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예산도 많지 않은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아 해야지’라고 선뜻 나서주었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복수를 하는 오채근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한 장면 한 장면 감정을 쌓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해 액션신도 무리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속 사건이지만 그 아픔이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남아있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이겨내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