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소유의 땅에 허가 없이 묘를 쓰더라도 오랜 시간 관리해왔다면 사용권이 인정되지만, 땅 사용료는 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땅 주인 A가 청구한 지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경매절차를 통해 경기 이천시의 한 땅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 땅엔 이미 B씨 조부와 부친의 묘가 있었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토지 사용료를 내라고 주장했고, B씨는 자신이 이미 오랫동안 이 묘를 관리해와 사용권을 획득(‘분묘기지권’)했으니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분묘기지권은 관습법상 인정되는 권리로, 땅 주인의 허가 없이 묘를 쓰더라도 20년간 공연(公然)하고 평온(平穩)하게 관리해왔다면 그 땅의 사용권을 갖게 된다는 게 골자다.
쟁점은 사용권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사용료조차 낼 필요가 없는지 여부였다. 이를 놓고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B씨가 분묘 인근의 토지를 점유한 탓에 땅주인 A씨가 그 외의 토지도 사용하는 게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에 “적어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로부터는 분묘 부분에 대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다수 의견으로 B씨가 A씨에게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분묘기지권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 사용을 허락한 것인데, 땅 주인과 분묘 소유자 중 어느 한 편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토지 사용료는 묘를 설치한 때부터가 아닌, 땅 주인이 청구한 시점부터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관 3명은 “20년 이상의 장기간 평온·공연하게 분묘기지의 점유가 계속됐다면, 토지 소유자가 묵시적으로 무상의 토지 사용을 용인한 것”이라며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