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서 김 집사 찾아볼까… 나라 사랑했던 선조들 발자취 따라가다

입력 2021-04-29 12:36 수정 2021-04-29 14:25
'홍난파가옥' 앞에서.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송월길 ‘홍난파가옥’.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붉은색 벽돌 건물의 일부가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있었다. 가곡 ‘봉선화’ ‘고향의 봄’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홍난파(1898~1941)가 말년 시절 6년간 보낸 곳이다.


경기도 용인 높은뜻하늘교회(한용 목사)가 진행하는 한국교회사 투어프로그램 ‘한양에서 김 집사 찾기’에서 일일 가이드로 나선 박종설 선임 부목사는 함께 온 세 명의 성도들과 건물 내에 전시된 유품 등을 관람했다. 지하 1층에는 홍난파가 사용했던 풍금 등이 있었다.

박 목사는 “‘고향의 봄’에 나온 가사 중 ‘나의 살던 고향’은 조선을 의미한다”며 “새문안교회 성도였던 홍 선생은 민족음악가였지만 친일파 논란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작곡가 홍난파

이어 “홍난파는 아끼던 바이올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대며 독립운동에 이바지했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며 “그러나 가족을 볼모로 협박하는 일제의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제를 위한 곡을 썼다. 그는 옥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43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목숨 걸고 나라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관람 후 인근에 있는 중구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새문안교회 등을 방문했다. 오후엔 한국기독교회관 등 교계 기관들이 모여있는 종로구 종로5가에서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김마리아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들여와 3·1운동을 독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 체포됐다.

'회화나무'

2019년 11월 조성된 ‘김마리아길’은 연지동 연동교회를 시작으로 세브란스관(옛 정신여고 본관), 회화나무, 선교사의 집, 여전도회관까지 이어진다. 세브란스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3·1운동 당시 김마리아와 정신여고 학생들이 태극기를 품고 비밀문서들을 감췄던 곳이다.


박 목사는 “세브란스관은 항일 여성독립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한 김 열사가 모교인 정신여고에서 교사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순국 열사 김마리아 흉상.

1934~37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여전도회 7~10대 회장을 역임한 김마리아는 여전도회가 일제에 맞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도록 지도했으며 44년 고문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예장 여전도회전국연합회는 지난해부터 여전도회관에서 ‘김마리아 기념전’을 열고 있다.


높은뜻하늘교회는 이번 달을 시작으로 장년 성도들을 대상으로 매달 1회씩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에 있는 한국교회사 유적들을 보고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던 신앙인들을 배우자는 뜻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지었다.

박 목사는 “2019년 교회 교역자들과 한국교회사 현장에서 애국과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성도들도 이런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아 교회에 프로그램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시대에 한국교회사를 배우며 선조들의 신앙 유산을 계승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정부의 방역지침 준수를 하기 위해 프로그램 참석인원을 4명으로 제한했다. 일일가이드를 하는 박 목사가 세 명의 성도와 동행한다. 일정은 오전에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홍난파가옥 이화여고 배재학당 등을 거쳐 오후에 종로5가 ‘김마리아길’ 코스, 부암동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방문 등으로 구성했다. 무겁고 지루한 교회사 공부가 되지 않도록 맛집 및 카페 투어도 한다. 박 목사는 깊이 있는 해설을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을 공부하고 있다.


이지은 집사는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흔적과 우리가 미처 지키지 못한 역사의 자취를 동시에 마주했다”며 “선조들의 소리 없는 희생과 섬김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화자 권사는 “기독교에서 한국 근대화의 교육 의료 문화 등이 시작됐음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홍길자 권사는 “역사적 현장이 잘 보존돼 믿음의 선조들이 지켰던 숭고한 가치가 잘 계승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