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이중섭 원화 12점이 제주로 왔다.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인 아내, 두 아들과 제주로 피난와 서귀포에서 1년 가까이 살았다. 서귀포 피난 시절은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상되는데 이 때 그가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긴 세월을 돌아 실제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내걸리게 됐다.
제주도는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대표작 12점의 원화를 기증 받아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소장한다고 29일 밝혔다.
기증 작품은 유화 6점과 수채화 1점, 엽서화 3점, 은지화 2점이다.
제주로 온 작품 가운데에는 1951년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머물며 남겼던 작품 7점이 포함돼 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비롯해 ‘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아이들과 끈’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등이 그것이다.
이중섭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1940년대 당시 연인이던 이남덕 여사에게 보낸 엽서화 3점과 서귀포와 관련이 있는 1950년대 제작 은지화 2점도 함께 전달됐다.
이중섭이 한국전쟁을 피해 제주에 머물렀던 1년은 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전해진다. 이중섭의 작품에는 바닷게가 자주 등장하는데 훗날 그의 아내는 그 이유에 대해 제주도 시절 먹을 게 없어 매일 바다에 나가 게나 조개를 잡아다 먹는 게 미안해서 그렸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1951년 서귀포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초가집 사이로 눌과 나목, 전봇대, 섶섬이 어우러지며 제주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변의 가족’은 초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새들과 가족이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이들과 끈’은 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서로 끈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구성 방법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이중섭 그림의 대표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희룡 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기증 작품은 이중섭 화가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 가장 사랑했던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전쟁과 피난의 시련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행복을 나눴던 이중섭의 작품이 코로나19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도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백신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이번 기증의 뜻을 이어받아 이중섭미술관 시설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향후 전시 공간을 넓히고 관람객 편의를 제공해 지역 문화 예술 진흥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 측은 “이번 이중섭 화가 작품 기증은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9월 6일을 전후해 이중섭미술관 특별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삼성가의 기증으로 이중섭미술관이 소장한 이중섭 원화 작품은 59점이 된다.
한편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 일본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해 1938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 전람회에 5점의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다.
1943년에 귀국한 이중섭은 문화학원시절 사귀었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두 아들을 낳았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 중순 가족과 함께 서귀포로 피난 와 약 1년 간 거주했다. 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가게 되고, 이중섭은 1953년 주변에서 마련해준 선원증으로 일본에 건너가 가족들과 극적으로 상봉했으나 일주일 만에 귀국했다.
1955년 이중섭은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작품도 적잖게 팔렸으나 제대로 수금이 되지 않았고, 일본의 가족을 만나러 가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이중섭의 건강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1956년 9월 6일 서대문 적십자병원 무료 병동에서 지켜보는 사람 없이 만 40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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