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집 문 앞에 호소문을 나눠 준 일부 택배 기사를 주거침입 혐의로 고발한 가운데, 아파트에 부착한 호소문의 내용이 공개됐다.
호소문에는 “택배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게 해 달라” “입주민과의 협의로 대안을 만들고 싶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신고당한 아파트 부착 호소문, 어떤 내용이길래?
택배노조 측이 28일 공개한 ‘입주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택배노동자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택배노동자와 함께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택배물품을 전해드리고 싶다” “주 평균 노동시간 71.3시간” “2020, 2021년 과로사 21명” 등의 글귀도 적혀 있다.
호소문에는 아파트 측이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진입을 막으면서 겪은 택배노동자들의 고충이 담겼다.
호소문 뒷장에는 “저상택배차량은 택배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심각하게 유발한다”며 “고탑택배 차량에서는 허리를 펴고 일할 수 있으나 저상 차량의 경우 허리를 깊이 숙인 채 혹은 기어 다니면서 일해야 한다”고 썼다.
또 “택배노동자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 택배차량에 오르내리며 고중량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게 되는데 화물실의 높이가 현격히 낮아짐에 따라 목, 어깨, 손목, 무릎 등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더욱 빈번해지고 심해진다”고 했다.
이어 “저상탑차로 개조하거나 교체하는 비용도 모두 택배노동자 개인의 몫”이라며 “손수레를 이용할 경우 배송에 걸리는 시간은 기존보다 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이와 같은 결정은 대안이 될 수 없다”며 “현재 택배차량만 제외하고 생수, 이사, 전기, 가전, 가구, 재활용 쓰레기 수거 차량 모두 아파트 지상 출입 중”이라고 했다.
또 “지상으로 출입하는 일반 차량(탑차) 대신 저상차량이나 손수레로 집 앞까지 배송하면 택배 기사들의 노동 시간·강도가 늘어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입주민과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동구 아파트 측 '호소문 배포' 택배기사 경찰 신고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3일 ‘택배 기사 2명이 무단으로 아파트 복도에 들어와 집 앞에 전단을 꽂아 뒀다’는 내용의 112신고를 접수하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고발인과 피고발인 택배노동자 2명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경찰 관계자는 “택배 기사들이 아파트 건물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고, 처벌을 원한다며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사할 수밖에 없다”며 “주거침입이나 경범죄처벌법상 광고물 무단 부착 혐의 중 어느 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 판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 측은 28일 오후 서울 강동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으로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며 “택배노동자들은 노동환경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후퇴되는 현실을 감내해야만 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알린 것이다. 이런 것을 이렇게 고발을 당하고 경찰 소환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노스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29일 국민일보에 “오늘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를 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며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시위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사업주 등의 의무’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근골격계 질환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시작된 '택배 대란'
총 5000세대 규모로 알려진 이 아파트는 지난 1일부터 주민 안전 등을 이유로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진입을 통제하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문제는 해당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 높이가 2.3m라 진입하지 못하는 택배차량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아파트 단지 지상도로에서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이를 두고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지난 1일과 14일 이 아파트 후문 입구에 물품 1000여개가 쌓이는 ‘택배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아파트 측 결정을 ‘갑질’로 규정하고 반발했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지상출입 금지를 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의 의견은 배제됐다는 주장이다.
아파트 측에서는 1년 전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 금지를 알리며 충분한 계도 기간을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김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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