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동 족발골목의 1세대 격인 ‘뚱뚱이할머니집’ 창업자 전숙열씨가 93세를 일기로 지난달 12일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9일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평안북도 곽산 출신으로, 만주로 넘어갔다가 1943년 서울에 왔다. 뚱뚱이할머니집의 시작은 족발집이 아니라 ‘평안도’라는 이북 음식점이었다. 전씨는 1957년 장충동에 식당 ‘평안도’를 개업하고 초기에 녹두빈대떡을 주메뉴로 팔다가 술안주를 찾는 손님들 요구에 맞춰 돼지족발을 개발했다.
가업을 이은 손녀 김문주·송현씨 자매는 “할머니가 이북에 계실 때 할머니의 어머니가 된장으로 해주던 요리가 생각나 시작하게 됐다고 하셨다”며 “당시 돼지 다리가 저렴해 할머니 나름대로 된장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북 돼지족발 맛을 되살려 내놓은 안주는 입소문을 탔다. 이후 이 일대에 족발집이 줄줄이 들어서며 ‘장충동 족발골목’을 형성했다. 장충동 족발집들은 1963년 장충체육관이 문을 연 뒤 레슬링·복싱·농구 등 당시 인기 스포츠를 관람하는 경기장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전씨가 현재의 상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였다. 이후 여러 차례 위치를 바꿔오다 1983년 장충동에 정착했다. 1990년 12월 며느리가 2대 사장이 돼 30년째 운영해 왔고 현재는 손녀들이 이어받았다.
TV 음식 프로그램에도 자주 소개됐다. 방송에서 전씨는 가게의 자랑인 수십년 된 육수를 새롭게 창업을 희망하는 출연자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그는 “오래된 국물을 써야 지금과 같은 색과 맛이 나온다”며 자연 재료만으로 족발을 삶고 국물이 부족해지면 물과 간장을 넣어 다시 졸이는 방식을 썼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체격을 보고 단골손님들이 붙여준 별명을 따라 지었다는 상호 ‘뚱뚱이’처럼 전씨는 인심도 후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도 했다고 한다. 명절에도 꼭 가게를 연 이유 역시 “나처럼 고향 없는 사람도 명절에 밥 먹을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라는 것이었다고 손녀 김문주씨는 전했다.
뚱뚱이할머니집은 지난 2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하는 ‘백년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중기부는 가게 특징에 대해 “족발은 물론이고 상차림에 나가는 된장까지 직접 메주를 띄워 제조하는 등 전통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 중”이라고 소개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