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코로나19 백신 공급의 불균형으로 ‘백신 격차’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선 그나마 확보한 백신을 폐기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부실한 백신 접종 체계가 이유로 꼽힌다.
AP통신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보관시한이 지난 미사용 백신 수천회분이 폐기되기 시작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말라위는 국제 백신공동구매기구 코백스를 통해 받은 백신 51만2000회분 중 절반도 채 사용하지 못하고 4월 초로 시한이 지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만6000회분을 소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스틴 뎀비 시에라리온 보건부 장관도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지난 3월 제공된 백신 9만6000회분 중 3분의 1이 시한 만료 전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이 부족한데도 백신이 폐기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백신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아프리카 1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50%가 코로나19 자체를 외부의 계획으로 받아들였으며, 3분의 1은 백신 임상 실험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뎀비 장관은 “사람들은 백신 접종이 우리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공공 실험이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와츠앱 등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지며 불신에 불을 지폈다. 우간다 보건부 장관은 자신의 백신 접종이 조작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트위터에 “제발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말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접종 동영상을 직접 올려야 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낮은 접종률에 영향을 끼쳤다. 로저 캄바 콩고 코로나19 대응 책임자는 사람들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확신을 주는 과정에서 접종이 두 달이나 지연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항상 백신을 접종하라고 설득하지만 (사람들은) TV를 통해 백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본다”고 말했다.
부실한 백신 접종 체계도 아프리카에서 접종이 더딘 이유 중 하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자료를 보유한 아프리카 45개국 중 32개국은 백신 공급량 대비 사용량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우간다는 백신 물량의 24%만 사용했는데, 백신이 도착하고 약 10일 후에야 각지로 백신이 배분됐다. 소말리아 내 WHO 관계자는 소말리아에선 접종소에 오는 사람들에게만 백신을 맞히는 등 적극적 지침이 없으며, 심지어 일부 접종소는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에 휴관한다고 전했다. 그는 “각국이 백신에 대해 잘못된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홍역 백신 접종과 같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프리카 CDC는 2022년까지 대륙의 60%가 백신 접종을 바라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목표 달성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 수장은 아프리카 백신 접종이 늦춰지면 아프리카 경제가 2∼5년은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