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져온 해상운임의 가파른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세계 경기 회복 추세에 따른 물동량 증가와 수에즈운하 사고 등의 영향이 겹치며 해상운임이 치솟자 해운업계에는 실적 개선 기대감이 연일 번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국내 수출기업들은 운임 부담에 선복 부족 등이 겹치며 “돈을 줘도 배를 못 잡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HMM과 팬오션의 주가가 각각 장중 3만9950원과 779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해운업계엔 미소가 번지고 있다. 해상운임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데다 이런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컨테이너 운송 15개 항로의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 23일 기준 2979.76을 기록하며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24일 SCFI가 818.16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3배 이상 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수출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미주 서안과 유럽 노선 운임도 같은 날 각각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4967달러, 1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당 4325달러를 찍으며 모두 전년 대비 최소 3배 이상 폭증했다.
이처럼 해상운임이 끝없이 상승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업계는 경기 회복에 따른 물동량 증가와 이에 따른 주요 항만 적체, 이로 인한 내륙운송 지연 및 컨테이너 부족 등이 한 데 맞물려 병목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지난달 말 발생한 수에즈운하 사고로 통항이 지연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 중소 물류업체 관계자는 “수에즈운하 사고로 나갔던 배들이 돌아오질 못하고 있어 일정이 2주씩 지연되고 공백기가 생기기 일쑤”라고 말했다.
해상운임의 고공행진은 올해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배재훈 HMM 사장은 이런 현상이 “최소한 한두 달은 더 갈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올 연말까지는 고운임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7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수출입물류 현안 점검 및 상생협의체’ 회의에서도 높은 운임과 선적 공간 부족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에는 실적 개선 기대감이 번지며 ‘어닝 서프라이즈’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중소 수출기업들은 이래저래 어렵기만 한 상황이다. 고운임 현상이 지속되는 데다 중국에서 출발해 한국에서 남은 선적공간을 채우고 미국, 유럽 등으로 향하는 해외 선사의 컨테이너선을 주로 이용하는 국내 기업들은 아예 배에 물건을 싣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돈을 더 준다며 자기들 물건을 실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물건이 배에서 빠지기도 하더라”며 “돈을 낸다고 해도 잡을 수 있는 선박, 컨테이너가 없어 선사한테 끌려다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해양수산부와 HMM 등 국적선사는 임시 선박을 긴급 투입하고, 선복량 일부를 중소기업에 우선 제공하는 등의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해상운임의 고공행진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사들이 계속 보수적으로 컨테이너선을 운용해온 탓에 최근 급격히 늘어난 선복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오랜 시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현 상황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