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의 28일 사회 공헌 방안 발표로 이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컬렉션이 국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문화계는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이같이 정의하며 사회 환원을 반겼다.
이 회장 개인 미술 컬렉션은 1만1000건, 2만3000여점이다. 이 가운데 불상과 고서화 등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회화·조각 등 근현대 미술품과 서양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컬렉션의 가치는 2조5000억원∼3조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48억원), 국립중앙박물관(39억7000만원)의 작품 구입 예산을 합쳐도 90억원이 안 된다. 따라서 이번의 전례없는 기증으로 양대 국립기관은 약 300년에 걸쳐 사야할 미술품을 한번에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
◆한국 간판 회화 ‘인왕제색도’ 등 고미술품 국립중앙박물관 품에
기증된 고미술품은 2만1600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4만여 점이며 이 가운데 기증품은 3월말 현재 2만8600여점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이 회장 기증 컬렉션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존 전체 소장품의 절반 규모이다. 지금까지 기증 받은 규모에 맞먹는다. 지금까지 가장 큰 기증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불이선란도’ 등 305점을 기증한 손창근 옹이었다.
내용상으로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등 국보 14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1393호)’와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등 보물 46건을 포함하는 등 놀라운 수준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한국의 대표 회화인 인왕제색도를 포함해 역대급 규모가 들어왔다”며 즐거워했다.
일생의 열정어린 컬렉션은 가격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가격을 평가하자면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말년 득의작인 ‘인왕제색도’는 한국 회화사를 대표할 국민 회화로 꼽히며 100억원대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그림으로 그린 거으로, 드물게 그린 연대가 표시돼 있다. 회화사적 가치가 높아 가격도 한 단계 높게 매겨져야 해 역시100억원대는 호가할 것으로 평가된다.
기증품은 회화사의 걸작 뿐 아니라 고지도, 고서, 도자기, 불상 등 기증 품목도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호림박물관 등에 비해서 분청사기 등 자기와 조선시대 목가구의 구색에서 약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도자기의 경우 ‘청자상감모란문발우 및 접시’(보물 1039호), 분청사기음각수조문편병(보물 1069호)등 6건이 들어왔다. 이번 기증으로 그 약점이 메워지게 됐고 박물관의 격을 높이게 됐으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을 보인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출처가 분명한 것은 소속 지역 박물관으로 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근현대 및 서양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지방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1만점 시대를 단박에 열게 됐다. 기존 소장품이 8700여점인데 이번 기증으로 1400여점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출신 A씨는 “예전에 수장고 정리하면서 언제 우리도 만 점 채우나 했는데 그 꿈이 이뤄지게 됐다”며 반겼다.
입이 벌어진 말한 대표작들이 들어왔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 ‘절구질 하는 여인’, 이중섭 ‘황소’, 장욱진 ‘소녀/나룻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박수근의 경우 3,4호짜리 소품을 주로 그려왔는데 이번에 들어오는 ‘절구질 하는 여인’은 이례적으로 60호짜리 대작이다.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가 20호 크기로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걸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배인 120억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다.
근현대미술품은 또 작가의 출신 및 활동 기반에 따라 200여점이 지방으로 갔다. 전남 신안 출신 천경자 작품이 전남도립미술관에, 대구 출신 이인성의 작품이 대구미술관에 가는 식이다.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제주도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 등에 두 작가의 작품 일부가 기증됐다. 이는 현 지역민들의 문화 접근권과 향유권을 제고할 수 있어 현 정부의 지방 분권 철학에도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한국도 ‘오르세미술관’ 급 서양 근대 걸작 갖추게 돼
최고 빅뉴스는 모네, 샤갈, 미로, 피카소, 르누아르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상주의 이후 서양 근대 걸작들의 대규모 기증이 이뤄진 것이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 등이 포함됐다. 모네의 수련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슷한 크기가 940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2차대전 이후 서양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조금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서양 근대 걸작은 완전히 비어 있었는데 이번에 이 부분도 새롭게 갖추게 됐다. 이로써 한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서양의 영향을 받았는지 등 학술적인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기증 받은 작품의 보관과 운용이 과제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기증 받은 미술품의 보관과 연구를 위해 미술관, 수장고 등을 새로 짓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6월부터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를 시작으로 유물을 공개한다. 2020년 10월에는 기증품 중 대표 명품을 선별 공개하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개최)를 개최한다.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8월에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를 개최를 시작으로 과천, 청주 등에서 차례로 작품을 공개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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