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시절 ‘구로 농지 사건’으로 농지를 빼앗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피해자 A씨 등 3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구로 농지 사건은 1961년 정부가 구로공단 조성을 명분으로 서울 구로구 일대의 땅을 강제수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농민들은 이 땅이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에서 적법하게 분배받은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정부는 서류상 군용지였다며 농민들을 내쫓았다. 이에 농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파기환송을 거듭했지만 최종 승소했다.
소송이 진행되던 중이던 1968년 박정희 정부는 검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착수했고,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는 이유로 농민 등 41명이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정부는 수사기록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해 1989년 다시 토지 소유권을 가져갔다.
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은 2008년에 이르러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을 거쳐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피해자들과 피해자 유족들은 정부가 농민 등을 상대로 강압 수사를 벌인 점, 법원이 농지 분배를 무효로 판단한 점 등을 들어 국가를 상대로 약 518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은 “국가로 농지를 분배받은 A씨 등이 위법 수사 등 국가의 불법행위로 수분배권을 상실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518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피해 농민들이 보유하던 각 분배토지의 수분배권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상실하게 됐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