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재산 60%가 사회에 환원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로,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 회장의 유족은 28일 이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안을 공개했다. 12조원 규모의 상속세, 3조원으로 추산되는 미술품 기부, 1조원의 의료 지원 등이 골자다. 이 회장의 재산은 주식, 미술품 등을 모두 더해 2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중 60% 이상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셈이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삼성을 약 700배로 키웠다. 1987년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1조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는 682조원에 달했다.
주식배분은 미정…연부연납으로 분할 납부
12조원의 상속세는 지난해 우리 정부 상속세 전체인 3조9000억원보다 3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에 대한 상속세 11조366억원과 부동산 등에 대한 상속세를 더한 액수다.
유족간에 주식 배분 비율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상속세법에 따르면 법정 상속 비율은 홍라희 전 라움미술관장이 3분의 1,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이서현 사장이 각각 9분의 2를 받게 된다. 상속대상 주식 중 홍 전 관장이 6조3000억원, 이 부회장, 이부진, 이서현 사장은 각각 4조2000억원을 상속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가족간 합의를 통해 상속 비율이 조정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상속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상속세는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2026년까지 5년간 6회에 걸쳐 납부할 전망이다. 상속세는 보유 예금과 금융기관 대출 등을 통해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감염병·소아암 치료 등에 1조원 기부
유족들은 의료분야에 1조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는 2008년 이 회장이 특검 수사 이후 사재출연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이 회장은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 가운데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1조원 중 감염병 대응 인프라에 7000억원을 기부한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이다.
유족들은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3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백혈병/림프종 등 13종류의 소아암 환아 지원에 1500억원, 크론병 등 14종류의 희귀질환 환아들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한다. 또 소아암, 희귀질환 임상연구 및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을 지원한다.
이건희 컬렉션은 국민의 품으로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린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점은 국내 주요 미술관에 기부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향한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또 국민들이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하한다.
국보급 문화재와 국내외 근대 걸작을 포괄하는 ‘이건희 컬렉션’은 가치가 2조~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미국 록펠러 가문이 지난 2018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진행한 이른바 ‘세기의 경매’의 낙찰가 총액(약 1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이번 기증에 대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역대급 사회환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