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냐, 글로벌 리더십이냐’ 딜레마 빠진 바이든

입력 2021-04-27 17:19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백신을) 외국에 보낼 만큼 충분히 보유하진 않았다”며 해외 공유에 선을 그었지만 전세계적 재앙이 펼쳐지는 와중에 미국이 백신을 독점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일주일만에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의 대외 지원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코로나19 사태를 조기 종식시키고 대외적으로는 한때 실추됐던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인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겉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미국이 백신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며 이 같은 이상적 시나리오에 제동이 걸렸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당국자들은 다른 국가에 대한 백신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백신을 개발도상국에게 유무상 지원하며 백신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미국도 하루 빨리 나서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아직 미국인에게 접종할 백신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6000만회분을 외국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빗발치는 백신 공유 요청에 마지못해 응답한 셈이다. 몇주간의 고심 끝에 나온 이번 결정은 백신을 제공해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챙기면서도 미국인에게 접종해야 할 백신을 외국에 제공해야 하는 껄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계책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자국 백신 접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AZ 백신을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사용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국 접종을 위한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등 다른 백신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안전성 논란 등으로 쓰지 않는 백신을 외국에 제공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AZ는 아직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나지 않은데다 혈전증 등 부작용 논란이 있는 제품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AZ 백신 수출 전에 안전성 검토 절차를 몇주간 거친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지원이 언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