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벼락거지 공포’…통장 깬 2030들, 코인 불장으로

입력 2021-04-27 17:16 수정 2021-04-27 17:54

비트코인이 8000만원을 넘나들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기간 동안 2030세대가 예·적금을 무더기 중도 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2030세대의 예·적금 해지 증감율도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시세 변동을 추종하며 이뤄졌다. 이 세대의 ‘벼락거지’ 공포증이 안정적 투자 자금마저 투기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으로 견인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국민일보가 27일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2030세대 월별 예·적금(적립·거치식 합산) 중도해지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달 둘째 주에 보기 드문 현상이 눈에 띄었다. A은행에서 지난 10~11일 각 1000여좌에 불과했던 중도해지 건수가 12일 3309건으로 3배 넘게 급증했다. 13일(3042건), 14일(3269건)을 거쳐 15일(4303건) 최고치를 기록한 뒤 16일에도 3214건이나 해지됐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비트코인 시세가 8000만원을 돌파한 주간이다. 비트코인은 지난 11일 7800만원 고지를 달성한 뒤 13일 8000만원을 넘어섰다. 14일에는 8199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16일까지 8000만원대를 넘나들다 7900만원 선에서 장을 마감했다. A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은 “요새 2030세대가 창구에도 예·적금 해지를 하러 많이 온다”며 “암호화폐 투자용인 것 같은데, 말리고 싶어도 말도 못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 은행 통계를 합산해보면 이 세대의 예·적금 해지 건수는 지난해 4분기부터 비트코인 시세를 한 달의 시차를 두고 따라 움직였다.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해 10월부터 월별로 24.3%, 36.6%, 50.3% 급등하다 올해 1월 13.6% 오르며 상승폭이 꺾였다. 2030세대의 예·적금 해지건수도 11월 5.2%에서 7.8%(12월), 8.1%(1월)씩 늘어났다.

1월 비트코인 시세가 꺾이자 2월 해지건수가 20.0%나 급감했다. 그런데 다시 2월 비트코인이 42.3% 오르며 ‘불장(대상승장)’을 이어가자 3월 해지건수도 갑자기 12.2% 급증한 것이다. 물론 이 자금이 증시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1월 최고 14.3% 상승한 뒤 횡보하면서 3월엔 1.6% 오르는 데 그쳤다. 사실상 암호화폐 상승장에서 추격 매수하기 위해 해지 자금 상당 부분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4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신규가입자 249만5000여명 가운데 63.5%인 158만5000여명이 2030세대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1월은 연중 중도해지 건수가 가장 적은 달인데 올해엔 해지 건수가 상당히 많았다”며 “주식과 암호화폐 등에 대한 투자 수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세대에서 예·적금을 해지해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27)씨는 지난해 12월 그동안 아르바이트 월급을 저금해온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원화 시장에 상장된 ‘앵커’ ‘스와이프’ 등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암호화폐)에 투자를 시작하다 성에 차지 않자 더욱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마켓의 ‘레이븐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씨와 함께 투자를 시작한 유모(27)씨는 “‘불장에 벌어놔야 한다’, ‘지금 돈을 못 벌면 바보’라는 말에 급하게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어차피 예금에 돈을 넣어놔도 이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월급쟁이로 살면서 집을 사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계속되는 정책 실패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로 정부의 ‘투기 경고’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인 최모(33)씨는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엔 폭등했다”며 “고위층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데 젊은 층이 코인으로 돈을 번다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조바심이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트코인 구매는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깝다”면서 “비트코인을 소유한다고 해서 그 기술력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자산”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자산 양극화로 무리한 투자가 유행하는 건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수익률이 높은 만큼 리스크도 높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강준구 조민아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