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1)씨는 이달 주식 배당통지서 수령 주소를 집이 아닌 회사로 바꿨다. 지난해 한 제약사 주식에 3억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빚투’(빚내서 투자)였다. 이씨는 “월급만 모아선 집 한 채 살 수 없겠단 생각에 빚을 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며 “몰래 투자한 주식인데 배당통지서 때문에 가족들한테 들키기 싫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종목 주식 30주에 대한 배당을 받은 직장인 홍모(30)씨도 “개인정보가 담긴 우편물이라 회사로 가져와 파쇄기에 세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동학개미 열풍’으로 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배당통지서 수령을 꺼리는 이들도 덩달아 늘었다. 이씨처럼 가족 몰래 ‘빚투’ 열풍에 올라 탄 20, 30대 투자자들의 항의가 많았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또 주소와 이름뿐 아니라 보유 주식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배당통지서 수령을 원치 않는다는 이들이 관계 기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민원과 항의가 잇따르자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이 우편물로만 수령 가능한 배당통지서를 온라인을 통해 수령 거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키로 했다. 예탁원 관계자는 27일 “최근 주식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직접 홈페이지에 통지 거부 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주식 배당통지서는 법무부 유권해석을 근거로 오직 우편으로만 수령하도록 돼 있다. 상법(제363조)에서 발행회사의 주주 소집통지는 ‘서면 발송’을 원칙으로 하고, 각 주주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전자문서(이메일 등)로 통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를 통해 ‘전자문서 이용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개별 종목(주식 발행회사)이 특정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동의로 간주돼 여전히 우편물로만 통지가 이뤄지는 것이다. 우편물 수령을 거부하기 위해선 명의개서대행회사(한국예탁결제원, 국민은행, 하나은행)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써야 했다.
웬만한 통지 등은 이메일이나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대로 우편물 통지를 고집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 명의개서대행회사 관계자는 “100% 우편으로만 발송하다 보니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며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며 돌려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명의개서대행회사 관계자는 “주주들도 불편하다는 건 알지만 주주명부를 받아서 일일이 우편 작업하는 게 우리도 부담”이라면서 “60년 전 방식을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탁원이 온라인으로 배당통지서 수령 거부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도 이메일이나 모바일을 통해 배당통지서 내역을 열람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간 건 아니다. 이에 따라 관련 법을 개정해 온라인으로 배당통지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4월 금융위원회와 법무부는 상장회사가 증권회사로부터 주주의 이메일 주소를 제공 받아 주주총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이메일 등 전자문서로도 통지서를 발송할 수 있도록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주주의 동의를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 등을 만들어 전자문서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