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 해쳐” 좌절된 ‘의족 스프린터’ 리퍼의 꿈

입력 2021-04-27 15:47
블레이크 리퍼 인스타그램 캡처

‘의족 스프린터’ 블레이크 리퍼(32․미국)가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세계육상연맹은 27일(한국시간) “리퍼는 현 상황에서 올림픽과 세계육상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며 “외부 인사로 구성된 기술분석팀이 리퍼가 제출한 의족을 검토하고 ‘경기력 향상에 기대 이상의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다리가 짧았던 리퍼는 부모가 마련해준 의족을 사용해 장애인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 출전해 400m 은메달, 200m 동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같은 해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400m와 1600m 경기에 똑같은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가 출전하는 모습을 본 리퍼는 패럴림픽이 아닌 올림픽에서 뛰는 것을 열망했다.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부터 이어진 세계육상연맹과의 법적 다툼 끝에 올림픽 출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에 리퍼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찾아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다퉜지만, 지난해 10월 CAS는 올림픽 등 육상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단 판결을 내렸다. 의족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한 다른 선수들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어서다.

리퍼는 기존 의족보다 4㎝ 짧은 새로운 의족을 제작해 세계육상연맹에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세계육상연맹은 “연맹 규정과 분석 결과를 보면 리퍼의 추정 키는 174.4㎝”라며 “의족을 사용해 그 이상으로 키를 높여 비장애인 경기에 출전하면 공식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의족을 사용한 리퍼의 키는 185.2㎝까지 커진다. 개인 기록도 의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리퍼의 400m 개인 최고기록은 44초30으로, 2020년 남자 400m 1위 기록인 44초91보다 좋다. 2019년 기록에 대입해도 리퍼의 기록은 9위다.

결국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고자 했던 리퍼의 꿈은 무산됐다. 피스토리우스 이후 의족 스프린터들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리퍼 외에도, 독일의 멀리뛰기 선수 마르쿠스 렘도 세계육상연맹의 불허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아닌 패럴림픽에 참가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