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소설속 사생활 도용?…김세희 작가 “허위, 법적대응”

입력 2021-04-26 17:29
김세희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좌)과 민음사 공식 입장문(우)

국내 문단에서 또다시 사생활 무단 도용에 관한 폭로가 불거졌다. 신인 작가 김세희의 소설 두 편이 사생활 노출과 침해,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적 지향·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3일 트위터 ‘별이, H, 칼머리’라는 이름의 계정에 자신을 작가 김세희와 18년 동안 친구였다고 밝힌 글쓴이(A씨)의 폭로글이 올라왔다. A씨는 김세희의 장편 ‘항구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희’이자 ‘H’, 단편 ‘대답을 듣고 싶어’에 등장하는 ‘별이’가 자기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세희 소설가의 필요에 따라 주요 캐릭터이자 주변 캐릭터로 (내 이야기가) 부분 부분 토막 내져 알뜰하게 사용됐다”면서 자신과 가족들이 그런 김세희의 소설로 인해 사생활 침해 피해를 봤다고 토로했다.

A씨는 “김세희 소설가로 인해 아우팅을 포함한 3가지의 피해 사실을 겪었다”면서 “김세희 소설가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세희로 인해 성 정체성은 물론 자신과 가족들의 사생활과 사적 비밀이 노출돼 고통을 받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하루빨리 이 일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A씨는 2019년 6월 ‘항구의 사랑’을 출간한 민음사와 계간지에 ‘대답을 듣고 싶어’를 실은 문학동네 측에 지난해 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사과를 요청하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고 한다. 이에 문학동네 측은 해당 작품이 실린 2019년 여름호를 이번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한시 판매 중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음사 측은 A씨의 주장에 대한 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출간 정지 등의 조치를 유보한다는 입장이다. 민음사는 25일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A씨로부터 내용 증명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별이, H, 칼머리’(이하 별이)님이 받았을 심적 고통에 대해 더 섬세하게 헤아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이 님이 제기한 문제 제기를 인지하고 작가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입장 차이가 확연함을 확인했다. 이에 민음사는 별이 님에게 작품 속 인물이 자신임을 특정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에 대해 알려줄 것을 조심스럽게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피해 사실에 관한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민음사 입장에 누리꾼들은 “불과 1년 전 같은 일로 문단계와 출판계가 떠들썩했는데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작가가 주변인의 삶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도용해서는 안 된다”, “피해 사실을 명확히 밝혔는데도 피해자보다 작가 보호를 우선시하는 민음사”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세희 작가 측은 26일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이날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항구의 사랑’은 팬덤, 동성애 문화가 퍼져 나갔던 2000년대 초반을 허구로 재창조한 소설”이라고 밝혔다. ‘대답을 듣고 싶어’ 역시 “화자에게 소중했던 한 인물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심경을 담은 단편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소설은 허구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인희’, ‘H’, ‘별’은 (폭로글을 쓴)A씨로 특정될 수 없다”며 “현실에 기반했더라도 실존인물이 아니다. 픽션”이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A씨가 작가의 오랜 친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작가이기 이전에 친구로서 A씨가 고통받았다고 말해 수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작가가 사과하고 위로할수록 오히려 A씨는 더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을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로서 친구관계만을 생각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며 대처하겠다”며 “필요하다면 법적 판단을 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진실이 아닌 허위에 기댄 위법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도 취하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한편 지난해에도 단편소설 ‘그런 생활’과 ‘여름, 스피드’의 작가 김봉곤이 자신의 지인들과 나눈 사적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 프라이버시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이 문제로 해당 소설이 포함된 소설집을 출간한 창비와 문학동네는 판매 중지와 환불, 전량 회수 조치를 해야 했다. 작가 김봉곤도 이후 사과문을 작성하고 문학동네에서 받은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반납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