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검찰이 지난해 처리한 5대 강력범죄 사범 숫자가 2000년 이후 가장 적었다. 예년에 비해 폭력 사건이 크게 줄면서 전체 강력범죄 수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코로나19로 소환조사를 최소화하는 등 수사 진행 속도가 늦춰지면서 미제사건 수는 급증했다.
2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5대 강력범죄 사범 37만102명을 처리했다. 이는 전년 41만9440명에 비해 4만9000여명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2000년 이후 매년 40만~50만명을 기록했던 5대 강력사범 수가 30만명 수준으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가장 많은 강력사범이 처리된 2000년(56만8035명)과 비교하면 20만명 가까이 줄었다.
5대 강력사범인 폭력사범, 흉악사범, 약취·유인사범, 방화·실화사범, 성폭력사범 숫자가 모두 감소했다. 감소 폭이 가장 컸던 건 폭력사범이다. 폭력사범은 2019년 36만9987명에서 지난해 32만3213명으로 감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인해 사적모임이나 외부활동 자제 등으로 대면접촉이 줄면서 폭력 사건이 함께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폭력 사범은 4만1112명에서 3만9109명으로 줄었으나 2016년과 비교하면 1500명 넘게 증가했다. 성폭력 범죄는 코로나19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코로나19는 검찰의 사건 처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전국 검찰청의 미제사건은 9만2869건으로 전년(6만8092건)에 비해 약 36% 증가했다. 6개월이 지난 미제사건 수치도 4693건에 달했다. 전국 최대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해 대부분 일선지검의 미제사건이 증가했다. 감소한 곳은 울산지검이 유일했다. 검찰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수사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수사가 지연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피의자와 참고인 등을 검찰청사에 불러 조사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소환조사 최소화 방침을 발표했다. 사건 관계자들의 불필요한 왕래를 줄여 코로나19가 지역사회나 구금시설 등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검찰 안팎에선 소환조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사건 처리 속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미제사건 증가에 ‘n번방 사건’ 등 디지털성범죄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2019년 2603건이던 성폭력 미제사건은 2020년 4190건으로 60.9%(1587건) 증가했는데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박사방 등 디지털성범죄 사건을 집중 수사하면서 미제 사건 수치가 증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대검은 지난해 4월 무혐의·기소유예된 성폭력 사건 전체에 대해 다시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에선 코로나19 여파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된 지 한참이 됐는데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직 부장검사는 “검찰청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 커다란 수사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소환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