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농업법인…실체는 ‘부동산 투기 법인’

입력 2021-04-26 16:36

무늬만 농업법인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아 막대한 불법이익을 챙긴 농업법인이 경기도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 농업법인이 도내에서 취득 후 매도한 농지와 임야 등 토지는 축구경기장 60개 크기인 60만389㎡에 달하고 단기간 매매를 통해 벌어들인 부당이득은 무려 139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경기도는 허위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거래, 막대한 차익을 챙긴 농업법인 25곳을 고발한다고 26일 밝혔다.

도는 지난 2013년 이후 경기주택도시공사(GH) 개발사업 6개 지구(광명 학온, 성남 금토, 용인플랫폼시티, 안양 인덕원, 안양 관양고, 평택 현덕지구) 및 3기 신도시 개발지구(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안산 장상, 광명 시흥, 과천 과천, 부천 대장)와 일대 농지를 취득한 67개 농업법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26개 법인이 농지를 취득한 뒤 영농행위를 벌이지 않고서 짧은 시간에 필지를 분할, 다수의 일반 개인들에게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A법인은 2014∼2020년까지 B지구, C지구 일대 농지와 임야 28만5000㎡도 구입하면서 농지 16만7000㎡에 대한 농업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 그러나 토지 소유권을 취득한 당일부터 2021년 1월 28일까지 1267명에게 작게는 17㎡, 많게는 3990㎡씩 쪼개서 팔아 3년 동안 503억원을 벌어들였다.

D법인의 투기행위는 도내 9개 시·군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D법인은 2014∼2020년까지 E지구, F지구 일원 등 농지와 임야 등 44개 필지 43만221㎡를 취득했다. 이후 소유권 이전 등기일부터 437명에게 0.5㎡∼1650㎡씩 분할해 팔다가 걸려 2018년 7월 12일 고발조치 됐음에도 2020년까지 농지거래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D법인이 벌어들인 부당이득은 67억9300만원에 달했다.

도에 따르면 농지법상 농업인이나 농업법인은 영농을 위해 구입하는 경우만 1000㎡ 이상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또 농업인이 아닌 일반인은 주말체험농장 목적으로만 1000㎡ 미만의 농지만을 취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농지 취득자는 예외없이 관할 읍·면·동사무소에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아야 하며, 실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에 따라 도내 개발지역 일대의 공직자 투기 감사 과정에서 농업법인의 불법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부동산 권리분석, 현장방문 등을 통해 농지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 농업법인 26곳을 적발해 공소시효가 지난 1곳을 제외한 25곳을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 반부패조사단은 경찰 고발조치와 별도로 농지법 등 관련 법령이나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헌법이 정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훼손되고 농지가 부동산투기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관련 부서에 감사 내용을 통보한 뒤 근본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정부에 공식 건의할 예정이다.

김종구 도 반부패조사부단장은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촌사회 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해 농업법인을 육성·지원하고 있는데, 농업법인이 법률을 악용해 농지를 투기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심각한 적폐”라고 지적하며 “농업법인을 이용한 투기성 농지거래가 성행하고 이들로부터 농지를 매수한 사람도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 휴경상태로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불법 전용되는 경우가 많아 농업법인의 부동산 거래 제한, 농지 의무 보유기간 설정, 위반시 처벌규정 강화 등의 부동산 투기를 막는 제도개선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도 반부패조사단은 투기 목적의 농지 허위 취득자, 구속수감 중인 경기도 전 공무원 관련 사업지구 등에 대한 공직자 투기 여부 등을 감사 중이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