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최고의 순간?모르겠다…같이 최‘중(中)’하면 안되나”

입력 2021-04-26 15:04 수정 2021-04-26 15:06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온스퀘어에서 기념촬영한 윤여정과 글렌 클로즈. 후크 엔터테인먼트 인스타그램 캡쳐.

26일(한국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에서 영화 ‘미나리’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윤여정이 ‘최고의 순간’이라는 찬사에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상식 후 LA 한국총영사관에서 한국 언론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 최고 그런 말이 싫다. 너무 1등, 뭐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최중(中)’되면 안 돼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최고의 순간인지 모르겠다.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동양 사람들에게 아카데미 벽이 너무 높은 게 됐지만 너무 최고가 되고 그러지 말자. 우리 다 같이 동등하게,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지 않나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쟁 후보였던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에 대해서도 또다시 언급했다. 윤여정은 “정말로 글렌 클로스가 받을 줄 알았다”면서 “글렌은 이번에 8번째 노미네이트됐다고 안다. 배우는 스타와 다르게 하루 만에 되는 게 아니잖나. 나는 그냥 정말 아카데미 온 것만 해도, 주변에서 받는다 해도 정말 안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엔가 영국에 갔을 때 그녀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연극하는 것을 봤다. 그걸 보면서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받길 바랐고, 난 기대도 안 했다. (그래서) 내 이름 불려지는데 (너무 놀라서) 영어를 엉망진창으로 못했다. 원래도 못 하지만 그거보단 잘할 수 있었는데, 그게 좀 창피하다”고 웃었다. 그는 앞서 시상식에서도 글렌 클로스를 비롯한 여우조연상 경쟁 후보들을 말하며 “경쟁은 없다. 나는 좀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렌 클로즈는 1947년생으로, 윤여정과 나이가 같다. 할리우드 대표 악역 배우로도 유명하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번까지 8번 노미네이트 됐지만 한 번도 트로피를 품에 안지 못했다.

윤여정은 이날 여우조연상 시상을 맡았던 브래드 피트와 관련해서도 “모두들 내게 브래드 피트 어떠냐고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영화에서 워낙 많이 본 사람이니까”라면서 “사실 그는 우리 제작자다. 뭐 워낙 말은 근사하게 하죠. 그래서 다음번에 영화 만들 때 돈 좀 더 써달라 그랬다. 아주 잘 빠져나가더라. ‘조금 더 쓰겠다’고”라며 웃었다.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의 공동제작사인 플랜B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윤여정은 자신의 위트있는 입담과 연기력 비결 등에 대해서는 “(연기 철학은) 내 열등의식에서 시작했다. 난 연극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내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나이를 먹고 보니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편안하게 하고 좋아해서 한다기보다는, 물론 내가 연기를 좋아하지만 좋아한 만큼 절실하게 연기했다. 정말 먹고 살려고 했다”면서 “그리고 내 입담은, 그냥 내가 오래 살지 않았나. 좋은 친구들하고 수다를 잘 떤다. 그런 수다에서 입담이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윤여정은 ‘미나리’ 정이삭 감독에 대한 찬사도 이어갔다. 그는 “감독들이 정말 하는 일이 많다. 감독은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한다. 영화는 종합예술 아닌가. 정말 바닥부터 위까지 아울러야 한다. 봉준호 같은 감독들도 다 대단한 거다”면서 “정이삭 감독은 정말 차분하게 현장을 컨트롤하는데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칭찬했다. 이어 “43살 먹은 애인데 내가 존경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정말 세련되고 현명하다. 우리 영화계의 희망을 본 것 같았다”면서 “내가 친구들에게 정말 한 번도 흉보지 않은 감독은 정이삭이 처음이라고들 하더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윤여정은 “늙으니까 대사 외우는 게 힘들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건 싫으니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마지막으로 오스카 수상을 기대해준 국민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내가 상을 받아서 (국민의 기대와 응원에)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기분을 알겠더라.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응원해주니까 나중에는 너무 피곤하고 부담돼서 눈의 실핏줄이 다 터졌다. 나중에는 상을 못 받으면 어쩌나 싶었다”며 부담감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은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계 전체를 통틀어서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에 있는 두 번째 수상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