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일까 ‘소득’일까.
서구 국가들이 무엇을 벌금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지를 두고 논쟁이 불거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핀란드나 독일처럼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곧바로 “두 국가는 ‘재산’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긴다”고 반박하면서다.
논쟁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발끈한 이 지사가 자신의 주장에선 “소득과 재산 등 경제력 비례가 핵심개념”이라고 재반박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윤 의원도 지지 않고 “(이 지사가) 핀란드의 예를 들면서 ‘재산비례’라 한 것은 ‘소득에만 비례’시키는 핀란드가 마치 지사님의 ‘재산까지 넣은 방식’과 같은 것인 양 표현한 것”이라며 “어떤 나라도 안 쓰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은근슬쩍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쓰는 방식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과 같다”고 맞섰다.
그런데 이재명과 윤희숙,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용어 사용은 정말 잘못된 걸까? [국민적 관심사]는 독일과 핀란드의 사례를 중심으로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에 대해 알아봤다.
핀란드는 “수입”이 기준 … 독일은 “재산상태도 조사”
결론부터 말하면, 두 사람 말 모두 절반씩 맞다. 핀란드는 순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고, 독일은 재산까지 벌금 양정에 참작하고 있다. 한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경제사정에 비례해 벌금을 매기는 제도를 통칭해 ‘재산비례 벌금제’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펴낸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방안 연구’와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5년 12월 발표한 ‘벌금형제도의 문제점과 입법과제’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핀란드와 독일이 모두 소득과 재산 등 경제상황에 따라 벌금을 정하는 ‘일수벌금제’를 채택한 대표적인 국가엔 해당한다. 핀란드는 이 제도를 100년 전인 1921년 도입했는데, 가장 최근의 과세기록을 통해 평균소득을 산정한 뒤 해당 금액의 1/60을 ‘일수벌금액’으로 정한다. 여기에 범죄에 따라 결정되는 ‘벌금일수’를 곱해 최종 벌금액을 결정하게 된다.
독일은 1969년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벌금 산정 과정은 핀란드와 비슷하지만, “일수를 산정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수입, 재산, 기타 기초사실 등이 사정될 수 있다”고 규정한 독일 형법 제40조 제3항에 따라 재산 상황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먼저 벌금액을 산정하되, 필요에 따라 추후 재산 상황 등을 고려하게 한 것이다.
다만 독일 내에서도 벌금 산정에 재산을 포함하는 게 옳은지는 학설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일정 기간 구매와 소비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한 벌금형의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게 타당하다는 학설과, 그럴 경우 부동산 등 자산을 많이 소유한 부유층에겐 벌금형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학설이 대립한다.
스위스도 재산을 벌금액 산정에 고려하도록 한다. 스위스 형법 제34조는 “법원은 판결시점에서 특히 행위자의 소득과 재산, 생활비, 소요될 가사의무와 부양의무 및 최저생계 등 행위자의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1일 벌금정액을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 “핵심은 경제 사정 고려한 일수벌금제 도입…구체적 산정방식은 논의 필요”
상황을 종합해보면,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말 자체가 아주 틀린 건 아니다. 독일과 스위스는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지만, 상황에 따라 재산도 고려하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도 경제 사정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통칭해 ‘재산비례 벌금제’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윤 의원의 지적처럼 핀란드는 벌금 산정에 재산을 포함하지 않는다.
양측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산정 기준과 같은 세부적인 측면에 집중한 이번 논쟁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벌금액 산정의 구체적 방법론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건 핵심을 비켜났다는 지적이다.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를 대표 집필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미숙 박사는 “일수벌금제도의 핵심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비례해 벌금을 매기자는 것”이라며 “구체적 산정 방식은 제도 도입 과정에서 함께 논의됨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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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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