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리더’ 에이드리언 홍 창이 주도
3·1절 100년 맞았던 2019년 3월 1일 설립
돈키호테식·모험주의 작전 비판도
북한 의식했던 트럼프 행정부에 버림받았나
자유조선은 2019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있던 이 단체는 북한 인권을 위해 비밀스런 작전을 펼쳐왔다. 그러다가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흔히 자유조선을 ‘반북(反北)’ 단체로 표현한다. 그러나 북한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참혹한 상황에 빠뜨린 김정은 정권만 겨냥하기 때문에 ‘반(反) 북한 정권’ 단체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권 단체로 평가되기도 한다. 자유조선의 목표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조선의 리더인 한국계 에이드리언 홍 창은 지난해 11월 16일 발행된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자유조선의 목표는 (김정은 정권의) 타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고,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조선은 극히 일부 지도급 인사를 제외하고는 ‘프로젝트’ 단체다. 자신들의 생업을 하다가 특별한 임무가 주어질 때 한시적으로 활동에 나선다는 의미다. 자유조선 작전에 한번 참여했다고 해서, 단체의 전모를 아는 것도 아니며 향후 작전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유조선 회원들 사이에서도 목표에 대한 생각은 제각기 다르다.
크리스토퍼 안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느낀 바로는 자유조선은 북한인권 단체”라고 규정했다. 그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구조를 돕는 게 나의 목적이었다”면서 “나는 ‘김정은 정권을 타도한다’ 하는 생각 같은 것은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자유조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에이드리언 홍 창이다. 그 자신이 자유조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는 2006년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돼 1주일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에이드리언 홍은 1984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태어나 6살 때 가족이 미국 샌디에이고로 이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권도 사범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선교사가 돼 멕시코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이드리언 홍은 미국 명문 예일대에 진학한 뒤 북한 인권 문제에 빠져들었다. 그는 결국 예일대를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 활동에 나섰다.
에이드리언 홍은 예일대 재학 시절 북한 인권단체 ‘링크(LINK·Liberty In North Korea·북한을 위한 자유)’의 설립을 주도했다. 2009년에는 싱크탱크 형식의 ‘조선연구소(Joseon Institute)’를 세웠다.
이어 2010년 ‘천리마민병대(Cheollima Civil Defence)’를 만들었다. 천리마민병대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에이드리언 홍은 그동안 강연과 각국 정부 설득 등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천리마민병대를 결성하면서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또 천리마민병대의 ‘민병대’는 ‘Civil Defence’를 직역한 미국식 표현이다. 그러나 에이드리언 홍이 진짜 모델로 삼은 것은 한국 역사의 ‘의병’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천리마의병대’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2019년 3월 1일, 에이드리언 홍은 자유조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과감해졌다. 자유조선은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선언했다. 이들을 수행하는 작전의 수위도 높아졌다.
자유조선의 직접적인 모태는 천리마민병대였다. 그러나 ‘링크’와 조선연구소, 천리마민병대를 거쳐 자유조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조선이 설립된 날짜에서도 에이드리언 홍의 한국적 민족의식을 읽을 수 있다. 바로 1919년 3·1운동이 100년 되는 날을 기념해 자유조선을 설립한 것이다.
한 자유조선 회원은 뉴요커에 “자유조선은 월급도, 직함도, 본부도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략과 비전이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조선 임무에 참여할 때 자비를 썼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처럼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자유조선의 임무에 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유조선의 회원 수는 베일 속에 갇혀있다. 에이드리언 홍은 뉴요커에 “자유조선 회원은 수천명이며, 15개국 이상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곧이 믿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자유조선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돈키호테’식이며, 모험주의적인 작전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자유조선 같은 단체의 활동을 알게 되면서 탈북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북한 인권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원망도 나온다. 여기에다 자유조선의 비밀스런 조직 구조는 그들이 타도하려는 북한 정권을 닮았다는 지적도 있다.
크리스토퍼 안은 이에 대해 “나는 비판론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앞에는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들이 있었다”면서 “나는 비판론자들을 바꿀 수 없지만, 나의 행동으로 탈북을 하려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유조선과 미국 정부의 관계도 첩보영화처럼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자유조선은 미국 국무부와 연방수사국(FBI)·중앙정보국(CIA)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을 계기로 자유조선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뉴요커 기사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홍은 북한대사관 진입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 당시 자신이 묵었던 호텔에서 FBI요원들에게 북한대사관에서 들고 나온 컴퓨터들을 보여 줬다.
그러나 FBI는 얼마 뒤 태도를 바꿔 에이드리언 홍에 대해선 수배를 내리고, 크리스토퍼 안은 체포했다. 명목상 이유는 범죄인 인도청구조약에 따라 스페인 사법당국이 이들의 송환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은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닷새 전에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당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로 끝이 났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북·미 대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서 “미국 정부는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의 배후에 자신들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유조선 회원들에 대한 체포와 수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조선과의 관계를 단절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에이드리언 홍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그 이후 우리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