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터뷰에서 만난 윤여정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말에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답했다. “사람.”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그의 ‘제1 고려사항’은 사람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신념이다.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에 출연하게 된 이유 역시 ‘사람’이었다. 윤여정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정이삭 감독을 만났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친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겸손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영화에 대한 정 감독의 지식에 감명 받았고, ‘미나리’ 대본에 담긴 따뜻함에 마음이 끌렸다고도 덧붙였다.
언제부턴가 윤여정이 인터뷰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환갑을 지난 이후 배우로서 자신은 ‘사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이 육십 넘어 결심했어요. 이제부터 ‘내 인생’을 살리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거예요. 최고의 사치죠. 나는 지금 사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돈도, 명예도 필요없다는 윤여정은 “나이가 들어 내 이야기는 다 버렸다. ‘어떤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좋은 일이겠다’ 결심한지 오래”라고 했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그다.
윤여정과는 최근 몇 년간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만났는데, 그는 매번 한결같이 ‘멋지다’는 느낌을 남겼다. ‘꼰대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어른’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대답들엔 저마다 인생의 깊이가 스며있다. 거침없이 솔직한데 결코 선을 넘진 않는다.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예의와 배려를 놓지 않는다.
2016년 5월 ‘계춘할망’ 개봉 당시 마주한 그는 “공백기 이후 배우로 복귀했을 땐 정말 절실했다.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도 했다. 그런데 60 넘어서는 내 인생을 살고 있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지금 나는 아주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 작품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선 “난 새로운 게 좋다”고 답했다. “똑같은 거 하면 싫잖아요. 도전, 그거 쉬워요. 지난번에 했던 거 피하면 돼요. 젊어서는 인생이 급하니까 그렇게 못하죠. 근데 난 이제 기다릴 수 있으니까 상관없어요. 살아보니까 인생이 ‘꽁 먹고 알 먹고’는 없더라고. ‘꽁이냐 알이냐’를 선택하는 건 나예요.”
2016년 9월 ‘죽여주는 여자’ 개봉을 앞두고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젊은이들과 소통하려 구태여 애쓰는 건 없다. 다만 환갑 넘으며 내가 작심한 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리라’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날 웃겨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 센스 있고 유머 있는 애를 제일 좋아한다”며 웃었다.
2018년 1월 이병헌, 박정민과 모자 호흡을 맞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선보이면서는 후배들 치켜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젊었을 땐 내 또래가 연기를 잘하면 질투심도 들고 그랬는데 지금은 (연기 잘하는 후배를 보면) 참 기분이 좋아요. ‘쟤네는 내게 없는 게 있구나’ 부럽고, 장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 여유가 생긴 내 나이에 감사해요.”
노년 배우 중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에 윤여정은 겸연쩍어했다. “독보적이지 않아요. 다보탑이유? 독보적이게. 그냥 아직까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에요. 날 써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고.” 향후 계획을 묻는 말엔 “그런 거 없다”며 서둘러 답변을 마쳤다. “글세, 올해 잘 살아남으면 내년에 볼 수 있겠죠. 몰라 인생은.”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윤여정은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며 영화 ‘미나리’를 선택했고, 딸 가족이 터 잡은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아 호연했다. 돈도, 명예도 필요 없다고 했던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한국 배우 최초의 연기상 수상이다. 아시아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일본)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