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본고장’ 크레모나에서 온 장인 이승진

입력 2021-04-26 06:00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현악기 제작자 이승진 씨. 이 씨가 25일 자신의 악기를 전시하고 있는 서울 광진구 크라이스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크레모나는 이탈리아 북부 중심 도시 밀라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소도시다. 인구가 7만 명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음악계에선 바이올린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바로 16세기 아마티 가문의 공방에서 근대 바이올린의 형태 및 구조가 확립된 후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가문이 정착시켰다. 특히 스트라디바리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명기 바이올린으로 이름이 높다. 지금도 크레모나에는 등록된 현악기 공방만 150여 개며 ‘현악기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가 3년마다 열린다.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현악기 제작자 이승진(42) 씨가 24~25일 서울 광진구 크라이스홀에서 악기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2018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고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 등을 선보여온 이 씨는 올해 스트라디바리 1701년 및 1715년 모델의 바이올린과 스승인 지오 바타 모라시 모델의 비올라 등 현악기 6대를 가지고 왔다. 이들 악기는 크레모나의 전통 제작 방식에 따라 최소 10년 이상 햇빛과 그늘에 건조한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로 제작됐다. 스승의 영향으로 악기에 뒤틀림이나 변형이 생기지 않으며 밝고 안정적인 소리가 멀리 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현악기 제작 분야에서 맹활약 하는 한국인들

“주문받고 완성한 악기를 전달하거나 제게서 구입했던 악기를 점검하기 위해 1년에 한두 차례 서울에 꼭 오려고 합니다. 2018년부터 전시회 형태로 개최해 연주자들이 현장에서 악기를 좀 더 이해하도록 돕거나 연주를 통해 소리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5일 서울 광진구 크라이스홀에서 현악기 제작자 이승진의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전시되고 있다. 왼쪽부터 스트라디바리1701, 가림베르티, 스트라디바리1751, 스트라디바리1715, 지오 바타 모라시(비올라) 모델. 이한결 기자

한국에서는 이런 현악기 제작자의 전시회가 드물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선 자주 열린다. 나무 건조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직접 마무리하는 현악기 제작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악기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드러내는 자리다. 그는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현악기 제작자 협회 정회원이 됐으며 크레모나에서 열리는 매년 전시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동시에 유럽의 여러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 매년 출전해 수상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콩쿠르가 모두 취소됐기 때문에 가장 최근 참가 대회였던 2019 이탈리아 안드레아 포스타키니 국제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는 그가 출품한 바이올린이 1위와 3위에 각각 올랐다. 특히 1위 수상작은 심사위원 제작 부문 최고점을 받아 ‘최고의 미적 감정’이라는 특별상이 수여됐다.

“콩쿠르 수상은 현악기 제작자들의 이름을 알릴 중요한 기회입니다.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나가는 것과 비슷한 이유죠. 대개 현악기 제작 콩쿠르의 심사위원은 제작자와 연주자가 반반씩 구성돼요. 악기의 만듦새와 함께 소리도 평가합니다.”

최근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수상하는 소식이 심심하지 않게 들린다. 그와 함께 2010년 크레모나 현악기 제작 학교를 졸업한 서성덕 박지환 등은 단골 수상자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현악기 제작 학교인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 학교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첫 한국인 유학생이 입학한 이후 2000년대 들어 그 수가 부쩍 많아졌다. 지난해 입학생도 8명에 달한다. 현재 한국 출신으로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은 5명 정도이고 아마추어 제작자나 학생까지 합치면 50명 정도다.

현악기 제작자 이승진의 바이올린 안쪽에 제작자의 라벨이 붙어있다. 이한결 기자

“과거에는 직업으로 삼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근래엔 그저 악기 제작을 배워 보고 싶어서 온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열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기는 분위기가 큽니다.”

유학 초기엔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악기 제작 공부

그런데, 현악기 제작자자 그의 천직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악기 제작자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요리를 공부했던 그는 한식과 양식 자격증을 취득하고 서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누나(이소미)가 이탈리아 굽비오 현악기 제작학교로 유학을 떠나자 그도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기 위해 뒤따라갔다. 인근 도시 페루자에서 요리학교에 다니던 그는 누나를 보면서 현악기 제작을 취미로 배웠다.

“요리나 현악기 제작이나 칼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제가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인 데다 악기 제작에 재미를 느껴서 아예 현악기 제작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레스토랑에 오후 4시 반 출근해서 11시까지 일하며 돈을 벌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악기 제작을 공부했습니다. 당시엔 젊어서 체력적으로 힘든 줄도 몰랐어요. 부모님도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제가 돈을 벌며 공부하니 뭐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현악기 제작자 이승진 씨가 25일 서울 광진구 크라이스홀에서 자신의 악기를 전시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굽비오 악기 제작 학교를 졸업한 그는 누나와 함께 상급 과정인 5년제의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 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악기 제작 완성도가 속도가 빨라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학교 졸업 후 이탈리아 최고 명문 현악기 제작 가문인 모라시(Morassi)의 공방에서 6년간 일했다. 직원 가운데 외국인은 그가 유일했는데, 수백 년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제작 기술과 칠 방식을 전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방을 열었다.

“직원 없이 하루 8시간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바이올린은 1년에 많게는 7~8개 정도지만 한국을 다녀가거나 콩쿠르에 출전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대개 4~5대 정도에요. 그리고 생존해 있는 제작자의 악기는 타계한 제작자의 악기보다 낮은 가격을 받기 때문에 판매를 통해 큰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크레모나의 생활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은 데다 악기의 수요가 꾸준하므로 문제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성장하는 중국 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바이올리니스트 아내와 결혼하며 악기에 대한 이해 깊어져

2015년 바이올리니스트 강운영 씨와의 결혼은 그가 악기를 연주자 관점에서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 7살 때 부모님 권유로 6개월간 바이올린을 배운 뒤 악기 제작 학교 입학을 위해 다시 바이올린을 익혔다고 해서 그가 연주자처럼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밀라노 포메리지 무지칼리 오케스트라와 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아내 강 씨의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바이올린의 소리가 더욱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한 그는 이제 머지않은 시기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승진 씨가 이탈리아 크레모나 공방에서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승진 씨와 아내인 바이올리니스트 강운영 씨가 크레모나 일상을 전하는 블로그에서 캡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는 나이와 무관하게 현악기 명장들이 총출동하는데요. 저는 2012년 처음 출전한 이후 지금까지 점점 순위가 좋아졌지만, 아직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올해 9월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5월 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준비할 예정입니다. 다만 지난해 3월 이후 한국과 이탈리아의 직항 노선이 없어지면서 항공편이 2~3곳을 경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확정적이라 예약을 수시로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크레모나가 속한 롬바르디아주는 이탈리아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았던 지역이다. 크레모나에서도 적지 않은 확진자가 나오면서 도시가 오랫동안 락다운(봉쇄)이 되기도 했었다. 그는 봉쇄 기간엔 도구를 집에 가지고 가서 제작에 몰두했다. 코로나19라는 힘든 시기에 그저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누나네 가족들과 함께 공방을 운영하고 싶어요. 매형(이지용)은 독일 미텐발트 현악기 제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영국의 현악기 전문회사 프로리안 레온하르트에서 일하는 고악기 복원 수리가입니다. 또 누나는 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한 파트씩 나눠 맡아 현악기 제작부터 수리 복원, 활 제작까지 하는 가족 사업을 이루고 싶습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