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 묶여 쓰레기 먹던 백구…애니멀호더 탈출기 [개st하우스]

입력 2021-04-24 09:07 수정 2021-04-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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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쓰레기장 같은 곳에 어린 개를 묶어 두다니.”
“세상에, 음식쓰레기 악취가 코를 찌르잖아. 불쌍한 강아지야, 누나가 구해줄게.”

4월의 차가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강화도의 한 시골 마을. 쓰레기가 가득 쌓인 비닐하우스에 새끼 백구가 한 마리 묶여 있었어요. 입안에서 밥알 같은 젖니가 자라나는 것으로 보아 생후 8주쯤 돼 보이는 녀석. 작은 백구는 60㎝짜리 목줄에 묶인 채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어요. 주변에는 음식쓰레기 썩은 내가 코를 찔렀죠.


딱한 처지의 백구를 발견한 것은 이웃 주민인 제보자 조윤정(39)씨였습니다. 대체 누가, 왜 이렇게 강아지를 키우는 걸까. 제보자는 분노와 호기심에 이끌려 백구의 견주로 추정되는 노인의 집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2마리가 10마리 되고…애니멀호더 전조

세상에. 제보자 조씨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흉측한 애니멀호딩(무분별한 동물 번식을 조장하는 행위) 현장이었습니다. 집과 마당 곳곳에는 음식물쓰레기와 폐기물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 사이를 성견 4마리와 새끼 6마리가 쓰레기 뭉치처럼 돌아다니고 있었죠. 새끼들은 제보자가 발견한 백구의 남매인 것 같았습니다.

애니멀호딩 현장. 애니멀 호더는 개 뿐만 아니라 생활 폐기물, 음식쓰레기 등 온갖 오물을 수집하고 있다.

현장에 방치된 개들. 갓 2개월이 지난 강아지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계심 강한 성견은 쓰레기더미 틈새로 숨어들었다.

집주인은 70대로 보이는 동네 할머니였어요. 공동주택단지 청소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주워온 고물을 마당에 쌓아두던 노인은 얼마 전부터 쓰레기더미 속에 믹스견들을 풀어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마리였던 개들은 점점 불어나 10마리가 됐다지요. 동물 번식을 방치하고 책임지지 않는 애니멀 호딩이 벌어진 겁니다. 할머니는 개가 크면 개장수를 불러 팔아버렸어요.

"이것도 사랑일까요?" 노인은 주변 공동주택에서 구한 음식쓰레기를 개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2마리가 이렇게 늘어났다. 누가 좀 데려가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악취와 소음을 참다못해 경찰서와 면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경찰과 지자체 관계자로부터 “주인 있는 개들이라 개입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답답해진 제보자는 “개에게 음식쓰레기를 먹이고 추위나 더위, 배고픔에 시달리도록 방치하는 학대를 하는 데 왜 개입을 못 하냐”고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제보자가 전한 경찰 답변이 황당합니다. “시골에서는 다들 그렇게 기른다”고 하더랍니다.

비록 경찰은 외면했지만 제보자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 구할 수 없다면 집 밖에 방치된 작은 백구만이라도 구하고 싶었죠.

'착한 구조'하면서도 마음 졸인 이유

지난 12일, 강화도에는 종일 찬 봄비가 내렸어요. 들판에 방치된 새끼 백구는 추위에 목숨이 위태로울 게 분명했지요. 걱정이 컸던 제보자는 그날 밤 목줄을 끊고 새끼 백구를 집으로 데려왔답니다. 주인인 할머니의 동의는 받지 않은 상태였어요.

구조 당일 현장 모습. 호더가 수집한 음식쓰레기와 폐기물이 널려 있다. 제보자 제공

차가운 봄비를 맞은 백구 모습. 제보자 제공

사실 백구를 구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현행법상 견주가 학대범이더라도 개를 구조하려면 학대범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지난 2013년, 사료를 제공 받지 못하던 철창 속 개들을 허락 없이 구조한 사람이 특수절도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대 현장에서의 무단 구조로 인정받아 ‘착한 범죄’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에요. 법원은 구조가 시급한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했다는 점을 인정해 구조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죠. 하지만 착한 범죄라도 범죄는 여전히 범죄겠지요. 동의 없는 무단 구조가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2012년, 동물학대 현장에서의 무단 구조 행위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대표적 사례. 판결문에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물들을 구조하고자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경위 등을 참작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구조 다음 날, 조씨는 노인을 찾아가 간밤에 벌어진 일을 털어놓았어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잔뜩 긴장했는데 할머니는 뜻밖에 덤덤했다고 해요.

고마워요, 그냥 그러시더라고요. 그러고는 그냥 강아지 제게 주세요,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데리고 가세요, 또 그러세요.”

제보자는 할머니에게 “음식쓰레기에는 개들에게 해로운 성분이 가득하다. 자꾸 먹이면 개들이 죽을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고 해요. 할머니 답변은 허무했습니다. “아, 그러냐고 자기는 먹여도 되는 줄 알았다”랍니다. 가난하고 무지했던 할머니는 학대인 줄도 모르고 그 여린 생명을 괴롭혀온 것이죠.

조씨는 “지금도 시골에서는 학대에 가까운 개 사육이 자주 목격된다”며 안타까워했어요. 1m도 안 되는 짧은 목줄에 개를 묶어두고 썩은 음식을 먹인 그 개를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잡아먹는 것이죠.

다행히 백구는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개들은 여전히 지옥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변화는 여전히 더뎠습니다.


*"10마리가 100마리되는 건 순식간…지자체 조치 서둘러야"

애니멀 호딩 현장을 수십 차례 수습했던 동물구조단체는 현장 상황을 어떻게 진단할까요?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의 채일택 정책실장은 "지금은 10마리지만 100마리 되는 건 순식간"이라며 개가 더 많이 불어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사전 구조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채 팀장은 "폐기물 속에서 음식쓰레기를 먹이며 기르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제2조에서 정의한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합니다.

채 팀장에 따르면 강화도 현장은 대량 번식의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지금은 10마리이지만, 10마리가 100마리가 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지자체에서 나서서 하루 빨리 동물 구조 혹은 중성화 시술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수습 비용을 최소화하고 고통받는 동물 수를 줄이는 최선책"이라고 덧붙였답니다.

애교쟁이 된 아기 백구, 수아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지난 21일 국민일보는 강화도에 가서 구조된 백구를 만났어요. 약간의 피부병으로 콧등이 까진 것 말고는 다행히 건강하답니다. 빼어난 귀여움을 뽐내며 장수하라는 뜻에서 이름은 ‘수’아로 붙였다고 해요. 낯선 사람을 보고도 반가움에 수제비 같은 귀를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니 빼어난 귀여움이란 이름의 뜻을 알 것 같더군요.

제보자 말을 들어보니 수아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했다고 해요. 벌써 이웃에 친구가 한가득이랍니다.

"다른 개들과 사회성?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이웃 반려견과 즐겁게 어울리는 수아 모습.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앞집, 옆집의 강아지들이랑 매일 만나요. 저희 마당에서 같이 노는데 너무 좋아해요.”

이렇게 애교가 많고 친구 좋아하는 수아는 쓰레기더미에 갇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세상이 온통 쓰레기밭이라고 생각했을 수아에게 따뜻한 품을 내줄 가족을 찾아주고 싶어요. 수아는 다 크면 7~8㎏ 정도 중형견이 될 거예요. 견생역전 수아의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링크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애니멀호더의 소굴에서 구조한 작은 백구 수아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생후 2개월, 체중 2.25kg 진도믹스 (성견 7-8kg)
-수컷, 예방접종 1/5차 완료
-뛰어난 사회성, 100% 실외배변 (실내배변 훈련 필요)
-강화도에서 임시보호 중

*수아의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의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naver.me/xDsntMi7


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