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의 접촉이 줄고 디지털 이용시간이 늘어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아동·청소년들은 온라인 세상 속 관계 맺음에 거리낌이 없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계속되지만, 아이들은 각종 게임이나 SNS 등 어디에서나 ‘랜선 친구’들과 손쉽게 대화(채팅)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보호하고픈 부모들은 막연한 걱정을 하지만, 막연히 ‘내 아이는 아닐 것’이라 믿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쩔 줄 모르겠는 무력감에 빠진다. 피해를 경험하거나 들여다본 학부모, 아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실태와 대응 방법을 2부에 걸쳐 풀어본다.
N번방 사건 등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무방비 노출된 ‘랜선 채팅(온라인에서 만난 이와의 대화)’ 실태에 대한 우려가 커졌지만, 초등학령기, 아동들에게까지 보편적인 일일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청소년을 둔 학부모들도 내심 그런 위험한 상황은 일부 문제 있는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일일 것이라고, ‘내 아이는 그런 이상한 채팅창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디지털 성범죄 등 피해자 지원사업인 ‘서울시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이희정 팀장은 23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쉽게 말하면, 성인이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게임 속 대화창, SNS, 유튜브를 비롯해 이미 잘 알려진 라인·카카오톡 메신저 등 어디서든, 누구든 다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동부터 성인까지 여러 피해 사례를 다뤄온 그는 채팅방 관련 피해는 특히 연령대나 가정환경, 학교생활 등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연령이 낮은 아이들은 어떤 측면에선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적인 표현이나 노골적 내용 등을 이름으로 내건 채팅방들은 어른들 눈엔 딱 봐도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방이 너무 자유롭게 존재하고, 그런 대화가 마구잡이로 오가는 세상부터 접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익숙해지고, 피해에도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채팅방 특성상 아이가 직접 피해를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부모나 보호자가 먼저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이 팀장은 “다룬 사례 중 아직 초등학생은 많지 않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나이대에는 피해 인지조차 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채팅 공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 자체가 이미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팀장은 “원론적인 얘기지만 끊임없이 아이들의 상태에 관심을 갖고 평소에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결코 부모님들이 죄책감을 느끼기를 원치 않는다”면서도 “근본적으로 온라인 채팅을 찾는 건 소통하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 때문인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매우 부지불식간에 채팅 속 잘못된 관계에 의존하게 되더라. 예측도 불가능했다”고 부연했다.
아이들은 정도만 다를 뿐 디지털 세상에서 ‘나쁜 경험’을 할 가능성은 너무나 크다. 때문에 부모를 비롯한 성인 보호자가 사후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속에서의 잘못된 대화나 행동이 명백한 범죄라는 점을 아이 자신도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을 갖는 게 필요하다”면서 “피해를 이미 입은 경우 그 문제를 어른과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드러내고 대응해보면서 무엇이 얼마나 문제였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리를 비롯해 여러 지원 단체와 기관이 있으니 정도와 상관없이 꼭 연락해 상담받고 도움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다음은 이희정 팀장과의 일문일답.
-카카오톡이나 특정 채팅앱 관련 문제가 많이 지적됐는데, 최근 어린아이들도 이용하는 게임 속 채팅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우려가 크다. 현실은 어떤가. 실제 피해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맞다 게임 부분은 어떻게 할 수도 없을 정도다. 맞다. 어떤 게임이 문제다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게임이든 어떤 앱이든 ‘대화’가 가능한 곳은 다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피해사례)경로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채팅앱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고 게임 내에서 대화를 진행하다 채팅프로그램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 댓글을 통해서 만나기도 한다. 실제 사례인데,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불특정 사람이 쪽지를 보내서 갑자기 욕설을 보내는 게 너무 괴로워서 ‘하지 말라’ 했더니 자신과 따로 대화해주면 그만한다거나, 왜 하는지 이유를 알려준다는 식으로 다른 채팅방으로 유도해 피해로 이어졌다. N번방을 모방했는지 비슷한 방식의 피해 사례도 많다.”
“요즘 발견되는 경향을 보면, 상담소에 오는 10대들은 15세 중학생, 만 13세들이 꽤 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처음인 게 아니고 초등학교 때 채팅에 노출되면서 피해를 입어봤거나 호기심을 충족한 경험 등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혼자 있거나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예전에 한 번 해봤거나 궁금했던 채팅방을 들어가 보고, 막연한 답답함을 온라인에서 만난 누군가와 해소하는 누군가를 만나 답답한 걸 해소하는 때도 많아진 것 같다. 아동 청소년은 온라인그루밍 피해가 절대적으로 많다. 대화하다 의존적이 되고, 그러다 협박을 받으면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식이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이나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의 위험성을 아이들도 알 텐데. 왜 이렇게 쉽게 무장해제되는 걸까.
“(어른들은) 상대방이 익명이라 더 위험할 수 있고 못 믿는다 판단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도 익명인 점에 먼저 안심하는 것 같다. 나도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화 안에서 교묘하게 개인정보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전혀 못 느끼고, 일단 한번 친해지면 경계심은 쉽게 풀어진다. 특히 ‘관심을 받는 것’에 약하다. 상대가 관심을 보이면서 친해지고, 얼굴 보고 싶다고 하면 사진을 보내주는 게 시작이다. 그다음부터는 그걸 빌미로 주변에 협박한다거나, 부모님께 말한다고 하면 두려워서 들어주고, 끌려다니게 된다.”
-게임 내 채팅 등 걱정되지만, 부모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솔직히 털어놓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알기 힘든 게 맞다. 상담까지 온 초등학생이 아직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나이대에는 피해 인지조차 되지 않아서다. 그땐 명확히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도움받지 못하다 그 피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서야 부모가 알게 될 때가 많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 못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나. 휴대폰이나 게임 사용 등을 금지 당할까봐서다. 부모가 자신에게 실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매우 크다. 그런데 실제 부모님들 상당수가 아이의 그런 상황을 알게 되면, 일단 배신감을 느끼고 그다음은 자책하고, 화난 가운데 핸드폰을 뺐거나, 게임·인터넷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 더 큰 일을 당할까 두렵기도 하고, 그것 외에 달리 방법을 모르겠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웃음) 실제 그렇다. 채팅 문제 얘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 어른들은 스마트폰을 주면 안 된다, 게임 금지 해야 하나 등 어떻게 막을지 방법을 고민한다. 그런데 패드도 노트북도 있는데 스마트폰 막는다고, 무슨 게임 금지한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단순히 통제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계속 쫓아다닐 수가 없는 형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방어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얘기해줘야 한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무엇을 해도 되고 안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명확히 알려주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부모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교육하는 것이다.”
“또 하나 들어주는 것이다. 그냥 듣는 게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고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님들이 자책하기를 결코 원치 않지만, 아이들이 관심을 필요로하고 어느 순간 찰나에 ‘소통의 부재’가 있었을 때, 잠깐 신경 못 썼을 때 다른 사람을 찾더라. 코로나19 시대, MZ세대에게 온라인에선 쉽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에 의존하는 이유도 잘 봐야 한다. 피차 잘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은 내게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집중해주는 그 사람으로부터 강렬하게 관심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더라. 게임상에서 아이템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런 것도 다 ‘관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고 싶은 거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미 피해가 생겼거나, 불안해 보이는 경우들이 많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 내용을 발견하시고 오시는 (부모님) 경우 거의 패닉 상태로 온다. 첫째는 내 아이에 대한 배신감, 내가 아이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하는 배신감을 느끼는 거다. 아이는 이때 죄책감이나 자책감을 느끼고, 부모님도 내가 신경 써주지 못해서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평상시에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거나 관계가 좋았던 경우에도 아주 짧은 틈, 잠깐 바쁜 어떤 때, 혹은 아이가 전학을 했다거나 해서 생긴 외로운 순간, 이럴 때 아이들은 손쉽게 대화를 맺을 수 있는 채팅방에 기대고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자책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중요한 건 다른 성범죄도 마찬가지지만 일상 회복과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부모도 아이들도 경험하면서 보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의 경우 피해를 당하면서도 피해로 인지하지 못하는 게 매우 많은데, 해결 과정을 경험하면 문제를 정확히 알게 된다. 또 하나 온라인상에서 뭘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 불가피한 일이라는 무력감에 힘들어한다. 도움을 받아보면 해결할 길,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우리(지지동반자)처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여러 지원 단체들이 있다. 피해 정도나 내용과 관계없이 꼭 관련 기관에 연락해 상담받고 도움받길 권한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