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그 한마디와 함께 검은 연탄 덩어리가 붉게 타오른다. 연탄불이 꺼지면 집안은 금세 냉골이 된다. 한겨울에도 연탄불로 추위를 나는 어느 마을의 겨울 풍경이다.
겨울이 다 지났으니, 이제 연탄의 계절도 끝난 것일까?
봄이 와도 연탄불에 몸을 기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집은 추위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또 다른 집은 빗줄기와 함께 몰려오는 습기 탓에 한여름에도 연탄의 힘을 빌려야 한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이들에게 연탄은 사계절 내내 필요하다. 이런 이들의 사정을 알기에, 누군가는 늦봄에도 연탄 창고의 빈 구멍을 메운다.
지난 14일 중계동 백사마을. 봄날 따뜻한 햇살 아래 펼쳐진 연탄 봉사 현장을 찾았다.
“날씨가 좋다”
서울 노원구의 한 상가 앞. 조끼를 입고 팻말을 든 이들을 중심으로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드문드문 반소매 차림의 봉사자도 보인다. 봉사자들은 “날씨가 좋다”는 말을 나누며 봉사 장소로 이동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기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연탄 봉사자가 필요한 현실이다. 연탄이 필요한 가정이 있을뿐더러 오르막길 끝 골목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집들의 특성상 차량을 이용해 연탄을 배달할 순 없기 때문이다.
“따뜻해지면 잊힐 수 있죠”
연탄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잊히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4월 중순에도 연탄창고는 열린다. 이날 봉사자들은 총 열 군데 집에 연탄을 배달했다.
연탄 봉사는 두 팀으로 진행된다. 연탄을 나르는 ‘지게팀’과 이를 받아 쌓는 ‘적재팀’이다. ‘지게팀’ 봉사자들은 지게를 사용해 연탄이 필요한 가정의 집 앞까지 나른다.
“퍽”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5kg, 가격은 800원이다. 연탄을 배달해야 하는 집들은 대개 가파른 오르막길에 있다. 조심스레 연탄을 지게에 지고 움직이려 해도 오르막길에선 늘 위험한 순간이 발생한다.
연탄을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던 한 봉사자의 연탄이 퍽 하고 깨졌다. 누군가에겐 연탄 한 장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경사가 심할수록 봉사자들의 허리는 더 굽어진다.
‘하나둘…백십 둘 백십....셋!’
적재팀은 연탄을 정해진 위치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고르지 않은 바닥에 빠르게 연탄을 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다 보면 연탄을 몇 개 쌓았는지 잊기도 한다. 베테랑 봉사자인 보라씨(29)도 쌓아 올린 연탄이 쓰러지거나, 연탄 개수를 잘못 셀까 봐 온 신경을 연탄에 집중한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열 개”
“에이~ 거짓말 마요. 스무 개 남은 거 다 들었어”
연탄 창고와 가까운 거리의 집엔 봉사자들이 일렬로 서서 연탄을 옮긴다. 일명 ‘릴레이’ 방식이다. 반복 노동에 잠시 표정이 굳어지다가도 재치있는 몇 마디에 금방 웃음이 난다.
봉사자 대열은 햇볕이 내리쬐는 도로와 집 앞 마당까지 이어졌다. 흐르는 땀을 닦을 틈도 없이 어느새 한 집에 연탄이 가득 찼다.
“왜 떼냐고? 비 오면 (집이) 축축하니까”
연탄 배달이 온다는 소식에 장씨 할머니(83)는 굽은 허리를 한 채 문 앞에 나와 서성였다. 4월 하고도 한참이 지난 날이었지만 할머니는 늘 연탄을 피운다고 했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4월 말에도 밤공기가 차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철에는 집안 습기를 날려버리는 용도로 연탄이 꼭 필요하다.
특히 노후화된 주택일수록 외풍이 쉽게 들어오고 여름철엔 더욱 습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겐 연탄이 늘 필요하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연탄 봉사가 지속해서 이어지는 이유다.
“땀 날까 봐 장갑을 안 껴서요”
봉사는 정오가 지나서 끝났다. 몇몇 봉사자는 손부채질하며 겉옷을 벗어 팔에 걸친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봉사자도 보인다.
따뜻한 날씨 속 연탄을 날랐던 이들의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유독 한 봉사자의 검은 손이 눈에 띄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머쓱해하며 (비닐) 장갑을 끼면 땀이 차 손이 미끄러질까 봐 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물티슈로 검은 자국을 쓱쓱 닦아낸 봉사자들이 하나둘 마을을 나섰다. 시끌시끌하던 골목은 어느새 한산해졌다. 여름의 문턱, 봉사자들이 거쳐 간 집마다 연탄 저장고가 가득 찼다.
늦봄 연탄 봉사 현장에선 두꺼운 옷을 입고 연탄을 나르는 겨울과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봉사자들이 채운 연탄은 봄을 지나 여름까지 두 계절을 함께 버텨준다. 사계절 내내 이 마을에 온기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人턴]은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포착한 ‘낯선 현장’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돌아볼 때 일상은 다르게 보이고, 때론 이 낯섦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듭니다. 국민일보 기자(人)들이 시선을 돌려(turn) 익숙하지만 낯선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아현 인턴기자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