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인데도요?” 코로나에 화장실 못 가는 기사들

입력 2021-04-22 00:10 수정 2021-04-22 00:10
한 상가 화장실에 '배달 라이더들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온라인 카페 캡처

개인택시기사 박모(51)씨는 얼마 전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을 지나다 급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박씨는 과거 이 근처 은행이 화장실을 개방해뒀던 게 생각나 은행 건물에 들어갔지만, 은행 관계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며 박씨를 가로막았다. 박씨는 ‘잠시 화장실만 쓰겠다’고 했지만, 이 관계자는 “은행 업무를 본 뒤 확인 도장을 받아오라”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다른 택시기사 안모(57)씨도 최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안씨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상가 앞에서 잠시 차를 정차한 뒤 화장실을 찾아 뛰어들어간 적 있다. 빠르게 용변만 보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상가 화장실 전체가 모두 잠겨 있었다. 한참을 헤매던 안씨는 결국 일을 보지 못한 채 나왔는데, 안씨 차량은 그새 불법 주정차 단속 카메라에 찍혀 과태료 4만원이 부과돼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물이 늘어나면서 택시기사나 배달노동자와 같이 공중에 개방된 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민간 건물뿐 아니라 지구대와 파출소 등 공공기관 건물도 외부인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서울의 한 상가에 '외부인의 화장실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아현 인턴기자

공공기관인데 화장실 사용 안 된다고?

민간 건물 소유주 측은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상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어 외부인에겐 바깥의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공중화장실법상 화장실을 개방하는 게 원칙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사용을 제한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특히 택시기사 등이 자주 이용하는 지구대·파출소 화장실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불편함이 더욱 크다. 정 급하다고 하면 파출소나 지구대에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사용 금지’ 문구가 붙어 있으면 아무래도 선뜻 들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울시내 지구대와 파출소에 '화장실 사용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아현 인턴기자

‘화장실 사용 금지’ 안내문을 정문에 붙여 둔 한 파출소 관계자는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지난해 확진자가 파출소에 다녀간 뒤 파출소 전체가 폐쇄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안내문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 노동자들이 댓글에서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배달노동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배달노동자가 모여있는 온라인 카페 ‘배달세상’엔 코로나19 이후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졌다고 얘기하는 글이 부쩍 많이 게시됐다. 한 배달노동자는 배달 음식을 받으러 간 국밥집에 ‘라이더 화장실 사용 금지. 코로나 우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며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올렸는데, 많은 배달노동자가 댓글을 달며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노상 방뇨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30년 이상 개인택시를 운전한 이모(64)씨는 “야간에 양화대교 북단 녹지에 가면 노상 방뇨를 하는 택시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개방화장실이라도 늘려야

당장 공중화장실을 늘릴 수 없다면 개방화장실이라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방화장실이란 기초자치단체장이 일정 규모 이상 시설물의 화장실을 소유주와의 협의를 거쳐 공중에 개방하게 하는 화장실이다. 개방화장실로 지정되면 화장실 개방 의무를 지는 대신 지자체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방식은 지자체마다 다른데,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큰 상황에선 방역 관련 비용을 지원한다면 민간 측의 부담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방역 관련 비용을 지원한다는 자치구에 관해서 아직 들은 바 없다”면서도 “개방화장실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앞으로 관련 예산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