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받았다. 지난 1월 1차 소송에서 일본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과는 정반대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부정하거나 그동안의 합의로 손해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국제관습법상 손해배상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판단에는 국가면제 원칙이 작용했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다른 국가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일본은 이 원칙을 근거로 소송 각하를 주장해왔다. 피해자 측은 “한국 법원의 재판은 피해자들의 최후 구제수단”이라며 국가면제 원칙 적용을 반대해왔다.
재판부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초래했음을 근거로 새로운 예외를 법원 해석으로 만드는 건 향후 큰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두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을 사례로 들어 “전쟁 중 발생한 손해와 관련해 자국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던 사건들에서 프랑스, 슬로베니아, 폴란드 법원 등이 모두 독일에 국가면제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국제관습법에 예외를 뒀을 때 예상되는 외교적 충돌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 선고 및 그 후 강제집행 과정에서 피고와의 외교관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승소 판결 직후 일본 정부는 판결 결과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이번 판결을 일본에 대한 면죄부로 보긴 어렵다. 국가 면제를 인정한 건 그동안 이뤄진 외교적 합의를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법리를 ‘방패막이’ 삼아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배상을 회피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 등 대체적인 구제방안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대한민국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이 끝난 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는 “인권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국제법 흐름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원고 소송 대리인 이상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진지하게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특히 법원이 어떻게 개인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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