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3월 석 달 동안 우리나라 인구가 1만명 줄었다. 그럼 올해 4만명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깜짝 놀랄 일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놀랄 일이 아니다. 2030년 한국 인구는 대략 4950만명이 될 거다. 매년 5만명씩 감소하는 셈인데, 해마다 비슷한 숫자로 줄어든다기보다 앞으로 감소 폭이 점점 커질 거라는 게 문제다. 10년 동안의 변화라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랄 일은 2030년부터 변화를 체감할 정도의 인구 절벽이 시작될 거라는 거다.”
출생아 27만명, 사망자 30만명. 2020년은 대한민국 인구 감소의 원년이 됐다. 매해 역대 최저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숫자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지난해 0.84명을 기록했다. 한국 고령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 절벽에 대비할 골든타임이 10년 정도 남았다”며 “묵시록처럼 경고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더 많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가 가져올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는 취약한 연금제도다. 국민연금이 적자로 전환되는 시점이 2044년이고, 고갈되는 때는 2051년으로 당겨졌다. 사학연금은 더 심각해서 2029년에 적자 전환된다. 연금 적자 전환 소식이 들리면 수급자들은 어떻게 할까? 고갈되기 전에 먼저 한 번에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금은 더 빨리 고갈될 것이다. 사학연금이 어려워지면 국민연금과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렇게 되면 연금제도는 완전히 개혁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국민연금이 적자로 전환되는 시점도 더 빨라질 수 있겠다.
“극복할 방법은 연금을 적게 받든지, 더 붓든지, 아니면 일을 더 하고 늦게 받는 수밖에 없다. 일을 더 하는 게 답이냐고 하겠지만, 덜 받거나 기여분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단 일을 더 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달부터 ‘정년 70세 시대’가 시작된 일본처럼 말인가.
“우리도 내년 대선 공약으로 정년 연장이 거론될 거라고 본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줄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실 텐데, 논의를 시작하면 법제화를 거쳐 시행까지 7년은 걸릴 거다. 그때는 지금 청년인 밀레니얼세대의 자리를 Z세대(1997년 이후 출생)가 대신하게 된다. Z세대는 밀레니얼세대보다 20만∼25만명이 적다. 이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갈 때는 지금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노동 인력 부족 현상을 우리도 겪을 수 있다.”
-고령층 고용이 늘어나도 일자리를 놓고 세대갈등이 촉발되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
“지금의 일자리 수가 유지된다면 2030년부터 한국도 일본처럼 청년 일자리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축소되면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남게 하려면 경제가 돌아가야 하고, 경제가 돌아가는 동안 윗세대가 노동시장에 남아있어야 후속세대는 부양비를 덜 수 있다. 만약 2027년에 정년이 64세로 연장되고, 60∼64세 인구 중 절반 정도가 노동시장에 남아있게 된다면 2035∼36년까지 생산가능인구를 인구의 절반인 2500만명대로 유지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019년에 정년 연장을 언급했다가 물러서지 않았나. 정년 연장은 기업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인데.
“맞다. 사회의 부담을 기업이 지게 된다. 그러니 정년 연장으로 생산성이 저하되지 않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마침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에 놓인 대학들이 변해야 할 시점이다. 대학이 계속 만 18세 신입생만을 모집 대상으로 할 것인지, 성인 재교육의 장으로 바뀔 것인지 변화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시점이 아닐까. 게다가 이미 많은 기업에서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연공서열을 유지하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은 기존대로 60세에 은퇴하면 된다. 노동시장에 생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생산가능인구 확충을 위해 이민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많다.
“쉽지 않다고 본다. 정부에서는 우수한 엘리트 외국 인력이 들어오기를 바라지만 언어장벽을 비롯해 한국이 그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또 1년에 5만∼6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들어와 5년간 일하고 돌아가는데, 그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있다. 제조업, 건설, 농수산업에 필요한 인력이지만 한국사회의 미래가 제조업이나 농수산업에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인력을 늘리는 건 잘못된 방향이 아닌가 한다.”
-그럼 이민 정책은 답이 될 수 없나.
“전 국민의 합의를 통해 속지주의(아이가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태어난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로 바꾼다면 모를까. 이민 정책보다 정년 연장이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초저출산은 어떤가. 돌이킬 수 없는 건가.
“혹여 출산율이 높아지더라도 태어날 아이들의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이 30.8세였다. 지금의 30대 초반을 1988년~90년생이 이루고 있는데, 90년생 여성이 35만명이 안 된다. 그다음인 95년생까지 72만∼73만명씩 태어났지만 여기도 여성이 절반이 안 된다. 가족계획과 남아 선호 사상이 겹친 세대라서 그렇다. 엄마의 수가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태어나는 아이의 수도 적은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도 사회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말 몇 년 안 가 한 해 출생아 수 10만명 시대를 보게 될 거다.”
-인구가 줄어드는 미래는 과연 디스토피아인가. 네덜란드나 룩셈부르크 같은 강소국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을까.
“그런 나라는 출발부터 작았고, 우리는 5000만이라는 인구 크기에 맞춰 사회 전체가 짜여 있다. 기후변화도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일어났으니 인구가 줄면 좋은 게 아니냐고 한다. 거시적으로는 아름다운 미래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리 아름답지 않을 거다. 인구 감소의 영향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 변동의 충격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이 공존하게 된다.”
-인구 감소가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영유아 인구 감소에 대한 분유 회사들의 대책은 고급화 아니면 시장 탈출이다. 그런데 고급화가 되면 분유 가격이 비싸지고, 분유 회사가 줄어들어도 가격은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낮은 가정은 아이 키우기가 더 어려워진다. 지금 지방대학은 신입생 미달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영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계층 갈등도 피할 수 없을 텐데.
“출산에서는 이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 연구를 보면 분만 건수가 소득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소득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에서 축소되는 반면 고소득층에서는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출산율을 높인 나라들의 사례는 참고가 될 수 없나.
“프랑스와 스웨덴 정도인데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인구 3000만명 이상 되는 국가 중에 한국처럼 초저출산을 20년 넘게 경험한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적응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교수님은 초저출산의 원인이 수도권 인구 집중에 있다고 하셨다. 경쟁이 심화되면 생존 본능이 후대 재생산 본능보다 우선하고,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한국이 초저출산을 겪는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 인구가 32년 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는데, 이달 초 통계를 보니 경기도 인구가 늘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한 것일 테니 서울 인구 감소는 인구 분산이나 경쟁 완화의 의미가 없겠다.
“전혀 없다. 지금 서울 인구가 953만명인데, 1985년의 서울 인구와 같다. 그때의 서울과 오늘의 서울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복잡할까. 85년에 경기도 인구가 493만 정도였고, 지금은 1322만이다. 서울의 정주 인구는 줄었지만 정말로 줄어든 게 아니다. 서울의 생활 인구는 1100만명이다.”
-인구 문제 해결에 있어서 Z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
“Z세대는 인류 역사상 전 지구적으로 공통된 가치관이 단시간 내 공유되는 것을 처음 경험한 세대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넷플릭스로 동시에 같은 콘텐츠를 보고, 틱톡으로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조직하고, 아프리카까지 문화적 동질감을 나눈다. Z세대의 무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초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인 물리적·심리적 밀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Z세대가 해외로 나가면 한국 인구는 더 줄어들 텐데.
“그 자리에 다른 나라 Z세대가 들어와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Z세대를 글로벌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키워야 한다. 예컨대 제가 스무살이던 1992년에 한국 평균 연령이 30세였다. 올해 평균 연령은 43세다. 그래서 지금 서른살 청년들이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하기엔 모호하다고 하지 않는가. 올해 스무살인 2001년생이 50세가 될 때면 평균 연령이 55세다. 이들은 쉰살이 돼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젊은이’일 것이다. 이렇게 윗세대가 많고 아래 세대가 없으면 한국 무대가 얼마나 줄어들지 이해되지 않나. 내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Z세대와 그 뒤에 오는 알파세대들을 위해서는 교육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2030년까지 10년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 절벽은 일하고 소비하고 투자하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걸 말하는데, 인구 절벽을 느끼게 되는 건 생산가능인구가 2500만명 밑으로 떨어질 때쯤일 것이다. 그게 2030년이다. 생산가능인구가 현재 2700만명 정도인데, 2030년이면 충청남도 인구에 해당하는 233만명의 일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거다. 아무 준비를 안 해도 앞으로 10년은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 한꺼번에 닥쳐오는 거대한 쓰나미를 맞는 것이다. 지금 지방 사립대들이 느끼는 생존 위기를 2030년이면 사회 전체가 느끼게 될 거다. 그때는 너무 늦다.”
-어떤 정책과 대응이 필요한가.
“인구 정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완화 정책과 적응 정책이다. 우리 인구 정책의 중심인 저출산 대응이나 앞으로 논의될 이민 정책이 모두 완화 정책이다. 적응 정책은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교사 수급 계획을 바꾸고, 군에서는 입대 병력 자원이 감소하니 거기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을 내는 거다. 제가 세 번째로 주장하는 건 기획이다. 인구 구조를 바꾸는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인구를 기반으로 하되 인구 외의 다른 것들도 묶어서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는 완화 정책보다는 적응, 적응보다는 기획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운 이후 인구 정책에 15년간 200조원을 투입했다는데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
“그 예산을 순수하게 인구 정책에 쓴 게 아니었다. 원래 있던 정책들을 모아서 발표하다 보니 그 정도 규모가 된 거다. 자료마다 규모가 다른데, 정확하게 집계가 이뤄지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에서 직접 관장하는 게 맞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대통령의 관심이 없으면 유명무실해진다. 이번 정부만 해도 연금 개혁 얘기가 나왔다가 없어졌고, 정년 연장을 언급했다가 아니라고 넘어갔다. 이제는 표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인구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우리가 적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