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여파로 공교육이 위축되면서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 현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등교 수업 중단은 특수교육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기였다. 특수교육에 있어 대면 접촉을 통한 사회성 계발과 생활 습관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목표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부터 전국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해 매일 등교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나쁘다. 상당수 학교에서 매일 등교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등교하더라도 통합반의 경우 수업을 원격으로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많다. 이는 혼자 힘으로 비대면 수업을 소화하기 어려운 장애 학생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특수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두 편의 기사를 준비했다. 첫 회는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애 학생과 학부모의 이야기다.
"매일 등교, 원칙일 뿐…강제 아냐"
“아이가 학교에 못 가니 틱이 더 심해졌어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일반 학교에 다니는 현진이(가명·11)는 발달장애가 있다. 현진이는 장애·비장애 학생이 함께 있는 ‘통합반’과 장애 학생만 모인 ‘특수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학교가 문을 닫고 집에 있는 날이 늘면서 현진이의 일상은 꼬여버렸다. 현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안 가 루틴이 다 깨져 (감정이나 생각 등을) 잘 표현하지 못하니까 상동 행동(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장애 증상)이 많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수교육대상자에게 ‘등교 수업’은 필수적이다. 특수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고 등교해 수업을 받은 뒤 하교하는 흐름 자체가 장애 학생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 과정이다.
이에 장애 학생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특수학급 학생 학부모 13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 자녀가 겪는 일상의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51.4%(763명)가 ‘신체 활동 감소로 무기력과 체중의 증가’, 51.4%(664명)가 ’영상매체 시청 증가’라고 답했다. ‘경기나 틱 횟수 증가’를 선택한 응답자도 10.1%(130명)에 달했다. 경직 및 퇴행, 수면장애 등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지난 2월 교육부는 전국의 특수학교·학급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까지 ‘매일 등교’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매일 등교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12일 부모연대에서 특수학급 학생 학부모 4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27.7%의 학생들이 여전히 ‘매일 등교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방역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일부 학교장이나 교사, 지역 공동체 등이 매일 등교 원칙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2.5단계까지 등교 수업이 원칙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하는 건 아니다”라며 “지역별로 피해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 학교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므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매일 등교 원칙을 지키더라도 모든 수업을 대면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통합반 수업도 함께 듣고 있다. 그런데 비장애 학생들은 격일·격주 등으로 등교하기 때문에 장애 학생들도 통합반 수업은 원격으로 들어야 한다. 결국 이들은 특수반 수업이 끝난 뒤 바로 하교해 집에서 원격 수업을 듣거나, 학교의 빈 교실을 활용해야만 한다.
"비대면 수업…장애 학생한텐 장벽과 같아요"
발달장애를 지닌 쌍둥이 하준이(가명·11)와 이준이(가명)는 지난해 주로 ‘학습 꾸러미’로 공부했다. 학습 꾸러미는 장애 학생들이 공부할 내용을 특수교사가 정리해 만든, 일종의 학습지다. 수학 과목에서 달력 읽는 법을 배우고 국어 과목에서 선 긋기 활동을 하면 그날 치 공부가 끝나는 식이다. 쌍둥이의 어머니이자 부모연대 활동가인 조경미씨는 “장애 아동들은 이걸 혼자 하기 힘들어서 옆에 누가 있어야 한다. 하다가 모르면 알려줘야 하니까”라며 “(그러다 보니) 주말에 막 몰아서 하고(는 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부터 등교 수업이 시작되면서 학습 꾸러미는 대면 수업과 원격 수업으로 상당 부분 대체됐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 또한 장애 학생에게 결코 적합하지 않다. 조씨가 지켜본 출근 전 쌍둥이들의 원격수업 플랫폼 ‘zoom’ 수업은 “하준이, 이준이 얼굴 보이게 자리에 앉으세요”라는 선생님의 당부로 시작했다. 선생님은 카메라에 얼굴이 비치게 앉으라고 지도했지만, 한 명이 보이면 다른 한 명이 사라지는 등 몇 분 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대면 수업이었다면 선생님이 아이를 직접 자리에 앉혔을 텐데 화면 너머 선생님의 목소리는 너무 멀기만 했다. 하루에 20분 정도 진행되는 실시간 비대면 수업의 모습이다.
실제로 대다수 장애 학생들에게 장시간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화면을 ‘껐다, 켰다’ 하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영상의 특정 구간을 계속 돌려보지 않으면 발작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장애 특성에 따라 반응도 다양하다. 조경미 활동가는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이 ‘e학습터’에 들어가 수업을 듣게 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로그인하는 것부터 불가능하다. 시작부터 막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일반 학교에서 통합반 원격 수업을 들어야 하는 장애 학생들은 어려움이 더 크다. 올해 고등학교에 올라간 하늘(가명·17)군의 꿈은 특수학교 보조교사다. 하늘 군은 특수학교 보조교사가 돼서 발달장애인도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기를 꿈꿨다. 이에 하늘군은 부모님과 상의 끝에 경남 창원의 일반 학교에 진학했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 학교에서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등교 첫날 하늘군이 ‘zoom’으로 통합학급 수업을 듣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님은 걱정이 커졌다. 하늘군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격주로 등교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1교시부터 9교시까지 고등학교 수업을 원격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군의 아버지는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실시간으로 수업을 들어야 출석을 인정해준다”면서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다 해줘야 한다. 아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면만 보고 앉아 있어야 하니 너무 고통스러워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급우들이 ‘학습 도우미’를 맡아 도움을 주거나 교사들이 보조해주는 것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하늘이의 어머니는 “이제라도 특수학교로 옮겨야 하나 고민된다”고 털어놓았다.
“방역이요? 물론 걱정은 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특수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 접촉이 필요하기 때문에 거리두기 원칙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기 어려워하는 일부 학생들이 중간중간 마스크를 내리는 일도 있다. 특수교사도 장애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신체적인 접촉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역에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특수학교 교사인 오혜림씨는 “마스크 쓰는 걸 인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방역 수칙을 지키기 힘들 때가 있다”면서 “마스크 쓰는 걸 계속 도와주다 보면 신체적인 접촉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애 학생들도 등교 수업을 받으며 ‘마스크 착용’ 등의 방역수칙들을 조금씩 학습해 나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언동중학교 특수교사인 김혜림씨는 “아이들이 뭉쳐 있다 보니까 (마스크를) 잘 끼는 친구가 잘 못 끼는 친구에게 ‘너 껴야 한다’고 지도하기도 한다”면서 “아이들끼리 모방, 사회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등교 수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화 인턴기자
이주연 인턴기자
[코로나19 시기 특수교육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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