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 확!”…속 끓이는 ‘민폐 주차’, 없앨 수 있을까?

입력 2021-04-21 00:01 수정 2021-04-21 00:01
흰색 벤츠 차량이 주차면 2개를 차지하고 있다는 글이 1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보배드림 캡처

국민들이 ‘민폐 주차’에 폭발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누리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일 글을 올리고, 댓글창엔 “저런 X, 우리 동네에도 있다”는 공감 표시가 줄을 잇는다. 이들은 “가뜩이나 인구 밀도가 높아 주차하기 힘든 나라에서 몇 칸씩 차지하는 민폐 주차까지 나타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쏟는다.

주차가 어려운 건 분명한 현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의 주택가 주차장확보율(자가용 차량 수/ 주차면의 수)은 103.6%다. 자가용 한 대당 주차면이 1.03면에 불과한 셈이다. 유료 주차장 등을 모두 포함해도 주차는 여전히 어렵다. 2019년 기준 서울엔 312만4000대의 차량이 있는데, 주차면은 425만1000면에 불과하다. 통상 주차면이 차량의 두 배는 돼야 출발지와 도착지 각각에서 원활한 주차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차 공간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 화물차량이 뒤쪽에 주차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쪽에 주차해 다른 차량의 주차를 방해하고 있다. 보배드림 캡처

그렇지만 주차 공간을 당장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렵고 예산 제약도 있기 때문이다. ‘민폐 주차’를 없애 부족한 주차 공간을 잘 나눠 쓰는 일이 절실한 이유다.

그런데 이 민폐 주차, 정말 없앨 수 있는 걸까?

법적 처벌은 어렵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논란이 되는 민폐 주차를 법적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 현행 도로교통법과 주차장법은 도로와 노상주차장에 적용될 뿐, 아파트 등 사적 공간에 대해선 다루지 않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월 펴낸 ‘이슈와 논점’ 보고서는 “(주차장법엔) 사적 공간의 주차장에 대해 뚜렷한 행위 제한 규정은 없을뿐더러 사회적 문제가 되는 주차장 진출입로 차단이나 주차 방해의 금지 관련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 역시 “특정인에 한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 또는 차마(車馬)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공공성을 지닌 장소”인 ‘육로’만을 단속하는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주차장에서 주차나 주차된 차량의 이동을 방해하는 장소가 육로에 해당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민폐 주차 차주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셈이다.

주민 간 협의 늘리고 자체 규약 만들어야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주민 간 협의를 늘리고 자체 규약을 만들어 갈등을 해소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평균 정주 기간도 짧고 주거 형태도 아파트와 같이 이웃과 교류가 적은 경우가 많아 지역사회 소속감을 형성하기 어렵다. 이런 한국적 주거 환경을 고려하면 이 방법을 실현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뉴시스

양승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차 문제에서 보이는 이기주의의 바탕엔 짧은 거주 기간이 있다. 이웃과 관계가 돈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미 공동체 생활을 상당히 오랫동안 해온 유럽 등에선 관련 규약이 잘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좁은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면 주민협의체 등 나름의 커뮤니티에서 원칙을 만들고 운영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이동성이 굉장히 높은 데다 아파트나 빌라 등 거주 형태 특성상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을 갖기 어렵다”라고 짚었다.

정부·지자체가 주민 간 소통 도와야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어렵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당근마켓의 사례를 보면 우리 국민이 지역 커뮤니티에 관한 관심이 적지만은 않다”라며 “지역 주민들이 먼저 지역협의체를 만들기 어렵다면, 정부가 논의의 장을 열 수 있게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입법조사처 보고서 역시 국회가 “입주민의 안전한 주차나 차량 운행을 위해 타인에게 방해되는 주차나 운전을 지양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권고·협조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드는 방안”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