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의 ‘죄송’은 반성 아닙니다” 먹먹한 유족의 글

입력 2021-04-21 00:03 수정 2021-04-21 00:03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는 모습. 뉴시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김태현(24)을 엄벌해 달라는 유가족의 간절한 호소가 나왔다. 이들은 이른바 ‘노원 세 모녀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명을 범인의 이름을 딴 ‘김태현 사건’으로 지칭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9일 ‘김태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족으로서 가해자 김태현에 대한 엄벌을 통해 국민 안전과 사회 정의가 보호받기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숨진 피해자 중 어머니의 형제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 A씨는 “유족들은 행복했던 가정이 무참히 희생된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이 하루하루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피해자들의 생전 단란했던 모습을 회상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제 동생은 어린 두 딸이 2, 4살 되던 해 남편을 여의고 20여년 동안 오로지 두 딸을 밝고 건강히 키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았다. 자신에겐 인색했으나 딸들은 부족함 없이 키우느라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다”며 “덕분에 본인은 물론 두 딸도 주변 모든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긍정의 아이콘으로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아름답게 살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조카들은 모두 대학까지 진학해 본인들의 적성을 찾아 각각 동물병원과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며 자신들의 길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 중 하루였다”며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삶이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의 손에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고 분노했다.

A씨는 “김태현은 제 조카를 3개월 넘게 스토킹했다. 사람 죽이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범행에 쓸 무기를 슈퍼에서 훔쳤으며 사람의 목 깊숙이 있는 경동맥을 정확히 찔러 결국 세 사람을 차례차례 살해했다”며 “부검의와 법의학자들은 ‘살해 방법과 정확도가 직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김태현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시신 옆에서 이틀이나 태연하게 먹고 마시며 죽은 사람의 지문을 이용해 증거를 인멸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합뉴스

또 “카메라 앞에서 준비한 듯 마스크를 벗고 태연히 발언하던 김태현의 ‘죄송합니다’라는 짤막한 말을 부디 ‘반성’이라고 인정하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또는 다른 그릇된 의도에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태현의 행동과 태도는 진정한 반성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아니다”며 “그동안 밝혀진 수많은 증거를 토대로 이제는 법정에서 김태현이 얼마나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살인자인지 철저히 확인되고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는 “동생과 조카들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보금자리에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숨을 거두면서 느꼈을 공포와 슬픔을 생각하면 목이 메고 숨이 막혀오듯 먹먹해 몇 시간이고 눈물만 흐른다”며 “저희는 사랑하는 딸의 주검을 마주했을 동생과 엄마와 동생이 무참히 살해된 장면을 목격했을 큰 조카를 떠올릴 때마다 이들이 겪었을 아픔, 절망감, 분노가 느껴져 바닥을 치고 가슴을 때리며 참담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민께 글을 전하는 이유는,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로 사회에 복귀해 다시금 유사 범죄를 저지른다면 유족으로서 슬퍼하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던 저희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며 “김태현 같은 잔인한 살인자는 죽는 날까지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돼야 한다. 이것은 저희 유족의 생각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난달 25일부터 함께 분노해온 국민 여러분의 불안한 마음을 대신해, 김태현이 반드시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받기를 간곡히 청원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퀵서비스 기사인 척 피해자 B씨의 집에 들어가 B씨의 여동생과 어머니, B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B씨가 만남과 연락을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또 범행 전 B씨가 실수로 노출한 집 주소를 찾아가 만남을 시도한 적 있고 연락처가 차단되자 다른 전화번호 등을 이용해 연락을 시도한 사실도 확인됐다.

신상공개 이후 처음 대중에 모습을 보인 지난 9일에는 포토라인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뻔뻔하게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며 “저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취재진 요청에 마스크를 직접 벗은 뒤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이 그가 미리 계획한 시나리오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나 또 한 번 공분을 사고 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