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에서 빚어진 ‘택배 대란’과 관련해 택배노조가 20일 CJ대한통운에 책임을 물었다. 입주자들과 택배 기사들 사이 갈등의 근원에 관리 책임을 방기한 CJ대한통운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CJ대한통운 대표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택배노조는 이날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와 A아파트 구역을 담당하는 대리점장을 22일 고용노동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저상차량 개조’ 문제 때문이다. 앞서 A아파트는 안전사고 및 시설물 훼손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도로 통행을 막고 지하주차장을 통한 이동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배 차량은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제한 높이(2.3m)보다 차체가 높아 지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차량을 자비를 들여 저상차량으로 개조해야 한다.
저상차량은 차체가 낮아 택배물품을 상·하차할 때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해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데 CJ대한통운이 이를 무시하고 A아파트와 저상차량 개조를 합의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는 그 근거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난 13일 노조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문에서 “CJ대한통운 당 아파트 배송담당팀과 저상차량 도입을 위한 일정 기간 유예 후 전체 차량 지하배송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해당 구역의 하청 대리점과 A아파트 사이 협의 사항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또 지상도로 통행이 막힌 지난 1일 이전부터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개별 택배기사들과도 충분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직접적 사용주는 대리점장이지만, 원청 택배사인 CJ대한통운 역시 소속 기사들에 대해 포괄적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사업주 등의 의무’ 조항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근골격계 질환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등’에 원청 택배사의 사업주로서의 책임이 명시됐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A아파트를 출입하는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기사 5명 중 4명은 자비를 들여 택배 차량을 저상차량으로 개조했고, 한 분은 아파트 출입구에 차량을 대고 손수레를 이용해 어렵게 배송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사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할 경우 25일 예정된 대의원대회 때 곧바로 전 조합원 쟁의 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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