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추방… 서방과 러시아의 ‘외교관 추방 전쟁’

입력 2021-04-20 16:23
주러 체코대사관 소속 외교관과 가족들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대사관 앞에서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연일 외교관을 추방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동유럽과 러시아가 연일 ‘외교관 추방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안보동맹 관계인 동유럽 국가들도 ‘대(對) 러시아 압박전선’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동유럽 국가들의 대 러시아 기조가 강경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5일 러시아가 지난 대선에 개입하고 연방정부를 해킹했다며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했다.

이밖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수감 중 건강이 급격이 악화된 데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러시아도 미국 외교관 10명을 내쫓으며 맞대응했다. 존 설리번 주러 미국 대사도 일시 귀국할 예정이다.

동유럽 국가들도 매일 같이 러시아 외교관들을 내쫓고 있다. AFP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키예프 주재 러시아 외교관 1명에 대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국제관례 상 기피인물이 된 당사자는 72시간 내에 해당 국가를 떠나야 한다. 앞서 러시아 외교부는 국가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우크라이나 외교관 1명을 구금한 뒤 추방했다.

체코도 지난 17일 러시아 외교관 18명을 한꺼번에 내보냈다.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2014년 무기고 폭파 사건에 이 외교관들이 러시아 첩보기관인 대외정보국(SRV) 소속 등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체코 정부는 자체적인 ‘대러 제재’에도 나섰다. 체코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입찰과 코로나19 백신 도입 과정에서 러시아 기업과 백신을 배제했다. 폴란드 외교부도 자국 이익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 3명을 추방했다. 러시아는 두 나라 외교관 각각 20명, 5명을 추방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WSJ은 “한동안 유럽 국가 대부분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는데, 최근 미국의 대 러시아 기조가 바뀌며 동유럽 국가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긴장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 관계자는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과 크림반도 등지에 15만명 규모의 군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우크라이나군과 친러시아 반군 간 국지전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미 연방항공국(FAA)은 이 지역을 비행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통보문을 각 항공사에 보냈다.

정작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서유럽 국가들은 한 발 물러서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날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군사조치를 비판하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도 러시아와의 해저 천연가스관 연결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압박 전선에 함께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