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백신 맞아야 하나… “영국발 변이, 개가 옮겼을 수도”

입력 2021-04-20 14:27

영국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개에서 처음 발생해 사람에게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실제로 개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숙주로 확인될 경우, 개를 포함한 동물에게도 백신을 투여하거나 아예 일괄적으로 살처분하는 등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CMP에 따르면 상하이 세포생물학연구소 천뤄난 교수 연구진은 최근 공개한 논문에서 ‘B117’로 통칭되는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초기 형태가 개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인간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 샘플에서는 변이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연구 대상을 동물로 확대해 봤더니 개에서 B117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B117의 초기 변이는 영국에서 자연 발생하지 않았고 인구 집단 내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다”면서 “심층 분석 결과, 개나 족제비, 고양이가 B117 변이 바이러스 직계조상의 숙주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개가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B117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변이 바이러스가 영국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해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게 통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일부 감염자가 복용한 항바이러스제의 영향으로 변이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천 교수 연구진은 B117의 가장 특징적인 변이 형태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인간에게서 채취한 샘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연구진은 자체 분석 모델을 토대로 B117이 영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인간이 아닌 동물을 숙주로 삼아 변이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동물 중에서도 개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취롄동 하얼빈 수의학연구소 바이러스학 교수는 SCMP 인터뷰에서 천 교수의 연구 결과를 입증하려면 더욱 확고한 증거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에게서 채취한 샘플이 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샘플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취 교수는 B117의 초기 형태 일부가 샘플 채취 과정에서 누락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취 교수는 천 교수의 연구가 만약 사실로 판명된다면 현재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까지 나왔던 코로나19 대책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었다”며 “만약 동물도 코로나19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사태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 교수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을 예로 들었다. AI가 발생한 양계장의 닭 전체를 살처분하는 것과 유사하게 코로나19 확산 지역 내에서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는 동물을 일괄적으로 살처분 조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람과 밀접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애완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취 교수는 설명했다.

살처분 외에 동물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취 교수는 “개에게 인간용 백신을 접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 접종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야만 할 수도 있다”며 “당장 인간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서 개나 다른 동물들을 위한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어떻게 가동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