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0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 교육 구현과 미래 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을 새 교육과정의 비전으로 설정하고, “국민과 함께 미래형 교육과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의 방점은 ‘국민과 함께’에 찍혀 있다. 그간 국가교육과정 개정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는데 새 교육과정은 일종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의미다. 교육부는 “교육 주체인 학생·학부모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학계·교육계와 일전(一戰)을 앞두고 학생·학부모 지지 여론을 등에 업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교육부가 여론전을 준비하는 이유는 과목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과정은 학생에게 언제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지 결정하는 국가 교육의 설계도다. 교육과정 개편 작업이 시작되면 학문 영역별로 자신들의 영역을 학교에서 더 많이 가르치려는 싸움이 펼쳐진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량이 줄어들면 학문 위상이 실추될 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의 교사 양성 규모에도 영향을 끼치므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교육부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쉬운 싸움이다. 앞선 교육과정 개편에서는 목소리 큰 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적정선에서 합의해 갈등을 봉합했었다.
그러나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얘기가 다르다. 이번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성을 강조한다. 미래 교육의 인재상으로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를 제시했으며, 특히 고교에선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는 고교학점제를 예고해 놓은 상태다. 현행 교육과정인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형 교육과정’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학생 과목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가 학계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면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해진다. 국가교육과정은 국어·수학·영어·과학·사회 등 주요 과목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수업과 시간을 정하고 있다. 학교 수업의 양이 정해져 있으므로 국가가 과목별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내용을 많이 규정할수록 학생 선택권은 축소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개편 당시에도 교육부는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량을 줄이려다가 학계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과학과 기술 분야를 관장하는 정부 기관들과도 힘겨운 싸움을 펴야 했다. 반대로 교육부가 학계 요구를 많이 수용하면 학습량 적정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양이 증가해 학습 부담이 커지면 사교육비가 뛰고, 사교육비 증가의 역풍은 다시 교육부로 향하게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 내용이 적용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침해하는 또 다른 요소는 수능이다. 수능의 과목 및 시험 범위는 고교 교육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수능 과목이 많아질수록 학생 선택권은 줄어든다. 고교학점제를 온전하게 도입하려면 수능의 힘을 빼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교육부 내부에서 대입제도 담당 부서와도 충돌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당시에도 수능 과목과 시험범위를 줄이려는 교육과정 담당 부서와 수능의 변별력을 비롯해 대입 전반을 두루 살펴야 하는 입장인 대입제도 부서가 충돌했었다. 결국 수능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도 크게 확장되지 못했다. 이번 교육과정 개편에서도 교육부의 대입 담당 부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개편 논의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유 부총리도 수능에 대한 지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함부로 수능의 힘을 빼려는 시도를 하기 어렵다.
‘국민과 함께’라는 슬로건은 이런 정책 추진 환경을 고려한 유 부총리의 승부수로 보이지만 통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 선거 국면과 맞물리는 교육과정 공론화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어렵고 욕 먹을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공론화 작업 자체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꼼수’라는 시각도 넘어야 할 산으로 보인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