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에 관여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직 직원 등이 가족 명의로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009년 LH서울지역본부 중계본동 사업소장을 맡았던 A씨(71)의 딸 3명이 2009~2013년 백사마을 토지 4곳을 사들였다고 서울신문은 19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의 차녀는 31세였던 2009년 5월 18일 백사마을에 있는 16㎡ 등 총 100㎡ 크기의 나대지를 1억9000만원에 구입했다.
서울시가 백사마을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하기 불과 열흘 전이었다. 당시 27세였던 A씨의 삼녀는 같은 해 9월 우물이 있던 자리인 백사마을 토지 14㎡와 무허가 건물을 매입해 2012년 10월 아버지 A씨에게 5000만원에 팔았다. A씨의 장녀는 2013년 11월 백사마을 내 토지 지분을 쪼개 76.04㎡를 2억3000만원에 산 뒤 2018년 2억9000만원에 매각했다. 6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셈이다.
현재 LH지역본부의 한 사업단 중간 간부인 B씨의 장모(78)는 재개발 계획 발표 직후인 2009년 7월 25일 1억1000만원에 백사마을의 토지 24㎡를 사들였다. 이 땅에는 1982년 전에 지은 무허가 건물이 있다.
서울시와 노원구가 지난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시행 계획을 인가함에 따라 B씨의 장모와 100㎡ 토지를 보유한 A씨의 차녀는 2025년 완공될 아파트 분양권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근 아파트 실거래가가 13억~14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3억~5억원의 자기 분담금을 내더라도 10억원에 가까운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다만 A씨가 직접 보유한 토지에 지어진 건물은 무허가 건물이라 서울시의 재개발 보상 기준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에 따라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비슷한 상황인 토지주들과 함께 노원구청 등에 분양권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들은 미공개 정보 이용 및 알박기 투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A씨는 “2007년부터 2008년 8월까지 LH에서 중계본동사업 팀장이었지만 2008년 명예퇴직한 후 월 100여만원을 받고 일을 도와줬다”면서 “복덕방에서 내놓은 땅을 산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B씨도 “2009년 본사 시설관리부 소속이었고 백사마을이 재개발 예정인지 알지 못했다”며 “장모의 토지 구매 경위는 12년 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차명 부동산 거래를 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이강훈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서울신문에 “신도시 개발과 달리 재개발은 주민들에게 진행 상황이 공개되지만 사업시행사인 LH 직원들이 행정기관에서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가족 이름으로 토지를 매매한 경우 부동산실명법 위반 소지가 있어 과징금 부과나 징역 등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도 수사가 필요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자 및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백사마을 주민들은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가 운영하는 부동산 투기 의심신고센터에 A씨와 B씨의 부동산 거래 의혹을 제보할 계획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