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향해 양 팀 선수들이 보인 집념의 크기는 같았지만, 우승 트로피는 단 하나였다. 5차전 4세트까지 치열하게 맞부딪쳤던 남자프로배구 챔피언 트로피의 주인공은 결국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으로 결정됐다. 대한항공은 홈 경기장에서 숙원이었던 통합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대한항공은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최종 5차전 경기에서 우리카드에 세트스코어 3대 1(24-26 28-26 27-25 25-17)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대한항공은 숙원이었던 구단 역사상 첫 통합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냈다. 대한항공은 전임 감독 체제에서 2016-17·2018-19시즌 정규리그 1위, 2017-18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통합우승엔 실패했다. 이에 올 시즌을 앞두고 2002년 이탈리아 21세 이하(U-21) 대표팀 감독을 맡아 U-21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이탈리아에 금메달을 안기고 호주 남자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독일 리그 팀을 지휘했던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을 남자프로배구 최초 외국인 감독으로 영입했다.
우승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대한항공은 1차전과 3차전에서 우리카드에 0대 3으로 패하면서 준우승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산틸리 감독과 선수들은 결국 챔프전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가 없는 선수진의 깊이와 경험이 5차전까지 치열하게 치고 받았던 챔프전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반면 시리즈 내내 선전했던 우리카드는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다. 2019-2020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코로나19로 챔피언결정전이 치러지지 않았던 터라 아쉬움은 더 크게 남는다. 다만 신영철 감독의 지휘 하에 젊은 선수들이 크게 성장한 점은 올 시즌을 치른 성과로 남게 됐다.
대한항공은 요스바니가 서브에이스 5개 포함 27득점을 올릴 정도로 좋은 컨디션을 과시한 데다 정지석(20득점)과 곽승석(10득점) ‘석석듀오’가 활약했다. 세터진에서도 한선수와 유광우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우승까지의 4세트를 매끄럽게 지휘했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는 정지석이 선정됐다.
반면 우리카드는 알렉스(26득점)가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활약했고, 나경복(16득점)이 거들었지만, 플레이오프까지 치르고 온 데다 대한항공보다 선수진의 깊이도 부족해 3세트를 내준 뒤엔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다.
1세트 초반 대한항공의 공격 집중력은 매서웠다. 정지석과 요스바니가 좋은 공격 컨디션을 선보이며 어려운 볼도 우리카드 코트로 꽂아 넣었다. 하지만 서브의 정확도는 이날도 떨어졌다. 요스바니와 임동혁이 각각 3개, 정지석과 한선수가 각각 2개씩의 범실을 범하며 1세트에서만 범실 수에서 우리카드에 4-10으로 뒤졌다.
반면 우리카드는 서브로 3차전 승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4차전 뜻하지 않은 복통으로 팀 패배의 원인이 된 알렉스가 다시 날카로운 서브 감각을 뽐냈다. 치열했던 19-19 상황 알렉스가 선보인2연속 서브에이스가 1세트를 우리카드에 안겨줬다.
대한항공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4차전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임동혁이 이날 저조한 컨디션을 보였던 데다 알렉스의 서브에이스도 수차례 터지자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은 2세트부터는 임동혁 대신 수비가 좋은 레프트 곽승석을 다시 투입했다. 공수 밸런스가 안정된 대한항공은 초반 5-0까지 앞서가며 승기를 잡는 듯 했다.
하지만 15-13에서 하승우의 깜짝 오픈 공격이 성공한 뒤 이어진 서브 때 대한항공이 포지션폴트 범실을 범하며 세트 중반 양 팀의 시소게임이 이어졌다. 23-23에선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의 신경전이 먹혔다. 하승우가 서브를 준비할 때 코트가 미끄럽다는 듯 계속해서 코트 정비를 요구한 산틸리 감독에 의해 경기가 지연됐고, 하승우의 서브가 대한항공 리시브를 날카롭게 흔들지 못하며 정지석이 오픈 공격을 성공시켰다. 대한항공은 결국 듀스만 3번 이어지는 접전 끝에 2세트 반격에 성공했다.
3세트는 다시 우리카드의 페이스였다. 세트 초반 12-7 5점 차까지 점수를 벌렸다. 대한항공은 교체 투입된 두 번째 세터 유광우의 지휘, 살아난 정지석과 임동혁의 서브 감각을 앞세워 마지막까지 쫓았다. 우리카드는 23-21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나경복의 서브가 아웃됐다. 반면 요스바니가 강력한 서브로 서브에이스 1개 포함 2득점에 기여하며 대한항공에게도 기회가 왔다. 그리고 26-25에서 뒤져있던 우리카드 알렉스의 백어택이 아웃되며 결국 대한항공이 챔피언의 기회를 잡았다.
마지막 4세트. 요스바니가 챔프전의 주인공이 됐다. 5-3에서 2연속 서브에이스를 터뜨리며 우리카드의 기세를 제압했고, 이어 22-16에서도 또 다시 2연속 서브에이스를 올리며 자신의 손으로 팀을 챔피언에 올려놨다. 우리카드 선수들은 막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눈 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인천=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