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을 구조했다면, 이렇게 모금하세요 [개st상식]

입력 2021-04-18 09:20 수정 2021-04-18 09:20
미용하고 버려진 유기견, 후암이의 후원계좌 및 SNS 계정. 임시보호자 김율(31)씨는 지난 6개월 동안 모금액 800여만원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huam._.1020

“미용하고 버려진 코카스파니엘, 후암이를 후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현재 모금액 222만5000원이며, 심장병 약으로 7만5000원을 사용해 잔액 215만원이 됐습니다.”

프리랜서 직장인 김율(31)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에 버려진 11살 유기견 후암이를 보호 중입니다. 버려질 당시 노견에다 심장병까지 앓아 수백만원 치료비가 필요한 상황. 절박했던 김씨는 개인 SNS 계정에 사연을 올리고 치료비 모금을 시작했지요. 김씨는 투명한 운영 차원에서 매주 SNS에 후암이의 근황과 모금, 지출 현황을 공개합니다.

김씨가 1~2주 간격으로 공개하는 후원금 사용 내역. 인스타그램 huam._.1020

지난 3월 기준으로 누적 모금액은 총 810여만원. 덕분에 김씨는 동물병원비 570만원을 감당할 수 있었지요. 김씨는 “최대한 공개한 덕분인지 응원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후암이 모금의 성공 사례는 이례적입니다. 동물 모금 상당수는 깜깜이운영이 걸림돌이 돼 중단되고는 하지요.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정부는 유기동물을 구조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력·예산 부족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자 시민 구조자들이 직접 나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의의 구조자들이 좋은 일을 하고도 모금 과정의 잡음으로 욕을 먹는다면 이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합법적이고 투명한 동물 모금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행정안전부가 지난 2월 개통한 기부통합관리시스템(1365기부포털) 기준을 살펴보고 모금 단체의 조언을 들어봤습니다.

1000만원부터 모금 등록 의무…개인모금자 기피 경향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기부금을 모집하려면 관할 시청 혹은 도청에 등록해야 합니다. 10억원이 넘으면 행안부에 알려야 하고요. 이를 어길 경우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습니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모금액이 1000만원이 넘을 경우 모금계획 및 사용내역 등을 지자체에 보고해야 한다. 1365기부포털

모금 등록을 한 다음에는 관련 서류들을 제출해야 합니다. 모금 및 사용내역 보고서를 작성하고, 국세청에서 제시하는 기부금 영수증을 후원자들에게 끊어줘야 하고요.

이런 복잡한 의무 때문에 개인은 모금액이 1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개인이 모금 계획 및 회계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하기 부담스럽다. 모금액이 1000만원을 넘을 것 같으면 빨리 중단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설명합니다.

후원자들이 원하는 건? 투명한 모금 운영

하지만 모금액이 1000만원을 넘지 않더라도 투명한 모금 운영은 필수입니다. 후원자들은 소중한 기부금의 사용처와 동물의 치료 근황 등을 알고 싶어합니다. 유기견 후암이의 사례처럼 신뢰도 높은 모금은 더 많은 기부를 이끌어낼 수 있지요. 구조자 김씨는 “모금액과 사용내역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내 돈이 제대로 사용되는 게 맞나’ 하는 우려를 산다”면서 “단체든 개인후원이든 아직까지도 이런 기본이 미흡해 아쉽다”고 전했습니다.

깔끔한 모금 정리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들을 지키는 게 좋습니다. 먼저 구조한 동물의 식비, 병원비 등 모든 지출은 정해진 카드로만 결제해야 합니다. 여러 개의 카드를 돌려 쓴 경우 나중에 합산하기 복잡하거든요. 둘째로 구입한 물품과 치료 장면, 영수증을 그때그때 사진으로 촬영해두세요.

김씨는 후원계좌에서 발생한 모든 지출 내역 및 구입한 물건 사진을 공개한다. 인스타그램 huam._.1020

마지막으로 동물의 치료 장면 및 근황을 SNS에 최소 주 1회 공개하기를 권장합니다. 기꺼이 지갑을 연 ‘랜선 후원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건 유기·학대 현장에서 구조된 동물이 행복해진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