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14일 신임 주한 일본 대사에게 “한국 정부와 국민의 우려가 매우 크다. 본국에 잘 전달하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상대국 대사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현안과 관련해 수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엄중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결정에 대해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 제소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해 과거사 문제 등으로 악화된 한·일 양국 관계가 한층 꼬일 가능성도 커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의 신임장 제정식 직후 이어진 환담에서 “이 말씀을 안 드릴 수 없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바다를 공유한 한국의 우려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고이치 대사에게 “한국 정부와 국민의 이러한 우려를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통상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 자리에서 신임 대사에게 양국 관계 발전의 가교가 되어달라는 수준의 당부만 해 왔다. 외교상 상견례 성격이 강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문 대통령은 제정식에 참석한 모든 대사들과 한 자리에서 환담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주한 리트비아 대사 등 제정식에 온 타국 대사 앞에서 일본 대사에게 오염수 방류 문제를 언급한 것은 우리 정부의 강한 유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이치 대사는 문 대통령에게 “현재 양국 관계가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문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며 “협력 정신과 의지만 있다면 어떤 문제도 헤쳐 나갈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강조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앞서 청와대 내부회의에선 참모들에게 일본의 방류 결정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법무비서관실에서 법적 검토에 들어갔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잠정 조치’에 대해 “일종의 가처분 신청”이라며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등에 따르면 재판소는 잠정 조치 요청이 있을 경우, 각 분쟁 당사자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또는 해양환경에 대한 중대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잠정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정조치는 유엔해양법협약 위반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해양오염을 막을 수 없는 경우에 발동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양법재판소 제소를 포함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향해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에 힘을 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정부의 대일 유화기조에도 불구하고 오염수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 개선은 요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