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녹색채권(그린본드) 발행 열풍이 불면서 ‘착한 투자금 유치’가 본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기반 경영이 더 주목받자 친환경차 경쟁을 벌이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앞다퉈 녹색채권 발행이 이뤄지는 것이다.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의미한다. 자동차 업계가 발행하는 ESG채권에는 녹색채권이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자동차 설비 투자에만 사용할 수 있다.
14일 자동차 업계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전날 기아는 7억 달러(약 7800억원) 규모의 외화 표시 녹색채권(그린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만기는 3·5·7년으로 표면이자율은 연 1.30~1.95% 수준이다. 외화 표시 채권은 환전 비용을 덜어주기 때문에 원화 표시 채권보다 해외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쉽다.
기아는 지난달 3000억원 규모의 원화 표시 녹색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2월 4000억원 규모 첫 녹색채권을 시장에 내놓았다.
녹색채권 발행은 완성차 업계를 넘어 렌트 업계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롯데렌탈은 지난 2월 19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올해 기업 핵심과제로 전기차 렌트 사업을 내세운 SK렌터카 역시 같은 달 980억원의 녹색채권을 선보였다. 렌트 업계의 경우 녹색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은 주로 친환경 자동차 구매에 사용된다.
녹색채권이 일반 회사채보다 통상 5bp(0.05% 포인트) 가량 낮은 연 수익률을 보이는 데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기압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발행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녹색 채권을 시장에 파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 쇄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투자자는 자산 건전성이 높은 공인된 기업의 회사채인 만큼 투자 가치가 추락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 대란으로 미국 시장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국내 업계로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그린뉴딜’에 화답할 계기를 녹색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50년 탄소 중립 추진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만 4년간 1조7000억 달러(약 1890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는 정부 관용차 300만대를 전기차로 교체하고, 지자체 전기 통학버스 50만대를 구매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정부는 물론 글로벌 기관투자가들까지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때문에 녹색채권 발행 자체로 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브랜드를 홍보하는 효과까지 얻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관리 당국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도 녹색채권 흥행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처음으로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이드에는 기업의 녹색채권 발행개요, 조달자금 사용처, 프로젝트 평가·선정 절차, 조달자금 관리, 사후보고 등 구체적인 채권 관리체계가 포함돼 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