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소리와 무티의 공통점은?… 자가격리 면제·단축 조치로 해외 공연

입력 2021-04-13 16:31 수정 2021-04-15 14:02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c)Kyutai Shim, DG-horz,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오는 17~18일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17일은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18일은 리사이틀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의무사항처럼 되어 있는 자가격리 2주간을 고려하면 4월 초에 출국해야 했지만 김봄소리는 공연 직전인 14일 출국한다. 이번에 싱가포르 보건당국으로부터 공연 이외에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가격리를 면제받은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해외 예술가가 자가격리를 면제받은 것은 김봄소리가 처음이다. 물론 한국에서 출국 직전 음성으로 나온 PCR 검사 확인서를 싱가포르 입국 시 제출하는 것은 필수다.

일본에서는 최근 해외 음악가의 입국과 관련해 자가격리 기간을 3일간으로 단축한 사례가 나왔다. 지난달 31일 도쿄·봄·음악제는 ‘리카르도 무티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 in 도쿄’ 2회를 예정대로 4월 9~21일 개최한다고 속보로 전했다. 또 4월 11일 지휘자 슈테판 숄테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레퀴엠’ 역시 예정대로 열린다고 밝혔다.

일본, 해외 예술가의 입국 시 자가격리를 3일로 단축

‘무티 오페라 아카데미’는 무티가 전 세계에서 뽑은 젊은 지휘자들을 데리고 일본 및 해외 성악가들과 함께 오페라 한 편을 연습한 뒤 ‘콘서트 오페라’ 형태로 공연하는 프로그램이다. 2019년 도쿄·봄·음악제가 3개년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지만,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다. 지난해 해외 음악가가 일본에 오지 못해 대부분 프로그램을 취소했었던 음악제 측은 올해(3월 19일~4월 23일)도 비자 발급의 어려움과 2주간의 자가격리 문제 등으로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됐다. 하지만 음악제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무티 아카데미’를 성사시키기 위해 문화청, 외무성 등과 긴밀하게 협의한 결과 3일로 단축된 것이다.

지난 8일 도쿄·봄·음악제 실행위원회의 기자회견. 아사히신문 인터넷 기사 캡처

무티와 젊은 지휘자들은 2주간의 자가격리를 염두에 두고 1일, 성악가들은 2일 일본에 입국했다. 다만 음악제 측은 일본 정부가 1월부터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할 때 코로나 감염 차단을 위해 개최 장소와 숙소에서 선수 및 관계자가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방역 조치인 ‘버블(Bubble) 방식’을 무티 등에게도 적용해 자가격리를 단축해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격리 여행권역을 뜻하는 ‘트래블 버블’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버블은 기본적으로 코로나 감염 확산을 위해 외부와 차단된 공간을 뜻한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 당시에도 버블 방식이 적용돼 한국 대표팀과 이들의 안내 등을 담당한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들은 같은 버블로 묶여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한편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지난 6일 해외 예술가 초청과 관련해 다소 완화된 조치를 내놓았다. 일본은 코로나19 이후 ‘국제적인 인적 왕래 재개를 위한 단계적 조치’에 따라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비즈니스(패스트) 트랙 등을 도입해 왔다. 지난 6일 개정안에 따라 예술가의 일본 방문과 관련해 자가격리가 단축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날 무티를 비롯해 또 다른 세계적 거장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5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6월)의 일본 투어 공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공연예술 분야도 경제, 스포츠처럼 패스트 트랙 도입되어야

다만 일본에서 모든 해외 예술가가 자가격리를 3일로 단축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공연장, 오케스트라, 기획사 등이 문화청에 초청의 필요성을 설명한 후 출입국 관리를 담당하는 외무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클래식계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적인(world-class) 예술가, 공연이 사회에 기여하는 여부, 대중교통 이용하지 않는 일정, 예술가 1인이 호텔 1개 층 사용, 백신 접종 증명서 첨부 등 5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5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해서 승인이 나는 것은 아닌 데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기준도 모호하다. 이 때문에 아사히신문도 지난 8일 도쿄·봄·음악제 실행위원회의 기자회견 소식과 함께 아르헤리치, 바렌보임 등의 일본 공연 확정 소식을 전하면서 “특별 방역 조치를 전제로 한 3일간의 자가격리를 인정받게 됐다”면서 구체적인 기준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무티의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해외 성악가들도 예외를 인정받지 못해 예정대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일본 공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일본 유니버설 뮤직 홈페이지.

불분명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일본 공연계는 이번 조치에 환영을 표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세계적 예술가들의 일본 공연이 이뤄지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비즈니스와 스포츠 분야에선 자가격리 면제를 허용했지만, 예술 분야에선 허용하지 않았었다.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의 일본 투어가 유일하게 허용된 사례였다. 다만 빈필도 전세기로 일본에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 예술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연예술 장르는 공연장 내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생태계의 중요한 축인 예술가들의 국제적 이동 중단으로 초토화된 상태다. 그나마 공연장 내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연장이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된 적이 없는 등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점차 입증되면서 완화됐다. 한국의 경우 현재 민간 공연장은 전체 좌석의 70%까지, 공공 공연장은 50%까지 채우고 있다. 일본 공연장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해 객석의 50% 정도 열지만, 일부 공연은 전체 좌석을 판매하기도 한다. 지난해 빈필의 일본 투어도 거리두기 없이 전체 좌석을 판매했었다.

하지만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국제 투어는 2주간의 자가격리 문제로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특히 클래식계에서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와 세계적인 명성의 거장은 자가격리 단축이나 면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난해 한국 국적의 예술가 외에는 서울시향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 경기필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 롯데콘서트홀의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포펜 정도가 2주간 자가격리를 감수했었다. 올들어 KBS 교향악단이 해외 젊은 지휘자들과의 협연이 여러 차례 있는데, 유럽 공연장이 문을 닫아 무대가 적어진 상황에서 이들 지휘자가 거장이라기엔 아직 지명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2주간의 자가격리를 감수하는 것이다.

영국은 백신 완료 증명서 있으면 입국시 자가격리 면제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과 함께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가간 백신 확보와 접종 속도 등에 따른 차별적 요인을 이유로 현재는 반대하고 있는데다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분분하지만, 영국 이스라엘 등 빠른 속도로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국가들이나 방역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중국 등이 ‘백신 여권’을 도입해 인적 교류와 경제 활성화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은 지난 1월부터 백신 여권의 형태는 아니지만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가 있을 경우 공연예술, 영화, TV 분야 관계자들의 입국시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면제해 주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는 '백신 여권' 소지자의 관중석 입장을 허용하는 조치를 구상 중이다. 사진은 중국에서 개발해 선보인 백신 여권. EPA연합뉴스

한국 공연계에서도 경제나 스포츠 분야처럼 해외 예술가의 자가격리 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외 연주자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의 투어가 중요한 클래식계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국내 공연장과 클래식 기획사 등이 회원으로 참가한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의 회장 겸 클래식 음악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이창주 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생태계가 무너졌다. 한국의 경우엔 민간 기획사가 클래식 산업을 끌고 왔는데, 코로나19 이후 기획사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클래식을 비롯한 공연예술 분야 예술가와 관계자의 입국시 자가격리를 면제 또는 단축하기 시작한 만큼 한국에서도 도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방문해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