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분쟁 막판 합의…“그러나 승자는 바이든”

입력 2021-04-11 08:30 수정 2021-04-11 08:55
바이든 거부권 행사 마감시한 하루 전 극적 합의
SK,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가동 가능해져
워싱턴포스트, LG·SK 합의는 ‘바이든의 승리’
① 미국 일자리 지키고 ② 전기차 공급망 구축하고
③ 지적재산권 보호 이미지에 ④ 기후변화에도 도움
“한국·미국 정부 당국자들, 큰 두통거리 덜어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였던 전기차 배터리 분쟁에 합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양사는 이르면 11일(한국시간)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공동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WP는 이번 합의의 승자로 LG도, SK도 아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W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LG와 SK가 전기차 배터리 분쟁과 관련해 막판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월 10일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LG의 손을 들어줬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감시한인 11일(현지시간) 하루 전에 극적인 봉합이 이뤄졌다.

WP는 “이번 합의에 따라 SK가 조지아주에서 짓고 있는 26억 달러(약 2조 9000억원) 규모의 제조시설 건설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면서 “연말까지 1000명이 채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WP는 이어 “이 공장은 2024년까지 2600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해 30만여대 이상의 전기차에 쓰일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량생산할 것”이라며 “이 배터리들의 대부분은 포드와 폭스바겐에게 공급될 것”이라고 전했다.

WP는 이번 합의가 ITC 결정은 물론 미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양측의 소송에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로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싼 LG와 SK의 법적 분쟁이 사실상 끝났다는 의미다.


특히 WP는 이번 합의 타결은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WP와 블룸버그통신은 그 이유를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미국 내 일자리를 지킨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조지아 주 내에서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일자리 최대 6000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압박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둘째는 미국 내 전기차 공급망 구축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WP는 바이든 행정부는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을 확대할 경우 새로운 부품 공급처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SK는 조지아주 공장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됐고, 미국으로선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셋째는 지적재산권 문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LG와 SK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으면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있다는 비판을 퍼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SK 공장의 일자리와 배터리를 의식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비판이 쏟아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넷째는 기후변화 대처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대처를 정책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상태다. 전기차는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전기차에 꼭 필요한 배터리 문제가 손쉽게 풀린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당국자들은 큰 두통거리를 덜어냈다”면서 “이들은 지난 몇 주 동안 LG·SK 양측에 합의를 종용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처와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것이다.

앞서 ITC는 지난 2월 10일 LG가 SK를 상대로 신청한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SK가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했다.

이에 대해 SK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들어설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와 두 명의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ITC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선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LG와 SK의 분쟁에서 그 만료시한이 11일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2013년 8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정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한 ITC 결정을 번복한 것밖에 없었다고 WP는 전했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로 타격을 입었던 회사는 삼성전자였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