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과 마스크 착용이 ‘뉴노멀’이 되면서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이 있다. 전국 30만 청각장애인이다. 보청기․인공와우 등 청력 보조장치, 상대의 입모양을 읽는 구화술, 수어, 필담 등 많은 언어를 조합해 소통하는 이들에게 코로나 뉴노멀은 거대한 소통의 장벽이 됐다. 팬데믹 1년, 청각장애인들의 삶은 안녕할까. 국민일보는 최근 2회에 걸쳐 중‧경증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동행 취재했다.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해줄 수 있으실까요? 인터뷰를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요!” 경증 청각장애인 표승화(24)씨가 취재요청서에 보낸 답장이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는 와중에 마스크를 벗어 달라니….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청력이 손상된 표씨는 지난해 경증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폐지된 장애 급수제를 기준으로 하면 청각장애 4급에 해당한다.
표씨는 부족한 청력을 보완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 모양을 읽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구화법을 쓴다. 상대가 마스크로 입을 가리면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동행 취재를 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입 부분만 투명하게 제작된 립뷰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했다.
립뷰 마스크는 청각장애인과 소통할 때 입 모양을 보여줄 수 있어 용이하다. 일부 연예인이나 공공기관 근로자들이 착용하면서 알려지긴 했지만, 사용이 보편화되진 않아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립뷰 마스크를 착용한 기자에게 “마스크 안 쓴 줄 알았다”며 직접 말을 거는 행인도 많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 표씨가 도착했다. 표씨는 “마스크 덕분에 알아봤다”며 웃었다. 비대면·마스크 착용이 뉴노멀이 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수강하는 취업준비(취준)생 표씨는 “힘든 부분이 많았다”며 지난 1년을 돌아봤다.
청각장애인 지원 미흡했던 원격 강의…청력은 더 악화됐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던 지난해 3월, 표씨는 대학 학생복지과에 청각장애인임을 밝힌 뒤 비대면 수강에 필요한 필기 도우미 등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장애 등급을 받아야 한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의사 소견서 등을 제출해도 지원받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비대면 원격 수업을 듣는 장애 학생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책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지원책은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활동 지원 사업으로 속기, 강의 영상 자막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그친다. 표씨는 국가에서 정한 지원 대책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별도로 지원을 받은 적도 없었다.
표씨는 비대면 강의를 들을 때 이어폰을 낀 채 오로지 소리에 의존해야 했다. 조별과제 시간에는 아예 카메라를 끄고 참여하는 팀원이 많아 입 모양을 확인하지 못해 말을 놓치는 경우가 잦았다. 그는 “온종일 음량을 100으로 설정하고 강의를 듣다 보니 청력이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청력이 심각하게 손상된 표씨는 지난 10월 경증 청각장애 확정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원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필기 도우미는 중증 청각장애 학생에게 우선 지원됐기 때문이다. 표씨는 “경증 청각장애 학생은 서류와 면접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지원받는 방식이라 학습·필기 도우미를 지원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수업 영상에서 자막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교수들이 강의 영상에 자막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없다. 때문에 표씨는 영상 내 음성을 인식해 자막으로 송출해주는 프로그램을 따로 구해야 했다. 강의자의 목소리와 발음이 뚜렷할수록 자막의 정확도가 높아져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표씨는 수강신청 때마다 다른 무엇보다 교수의 발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다.
평소 어떻게 강의를 수강하는지 묻자 노트북을 꺼내든 표씨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교양 강의 하나를 클릭했다. 녹화된 강의(녹강)를 듣는 표씨에게 실시간 강의(실강)와 녹강 중 무엇이 더 편한지 질문했다. 표씨는 대답 대신 수강 중인 강의 화면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이 강의 속 교수의 말을 분석해 자동 자막을 송출하고 있었다.
자막은 교수의 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표씨는 “실강이든 녹강이든 자막을 이용해 한 번 더 들어야 하는 건 똑같다”며 “이 정도 자막으로도 그나마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자막의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표씨는 한 강의를 최소 두 번 이상 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비대면 상황 속에서 지원 없이 영상으로 강의를 듣는 것보다 더 큰 ‘벽’을 마주했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착용하게 된 마스크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계속된 1년, 녹록지 않았던 청각장애인의 '취준기'
표씨는 최근 코로나 19 상황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대학생이자 취준생으로서 고민이 커졌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생인 그가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던 중 마주한 벽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물었다.
-코로나19 상황 속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불편한 점이 있었나.
“코로나19 비상대책회의 등을 보면 장관이나 총리 등이 마스크를 끼고 연설을 한다. 옆에 수어통역사가 있지만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어를 아는 건 아니다. 자막도 없이 코로나19 상황 속 청각장애인과 관련한 문제는 무조건 수어지원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쉬웠다.”
-일상에서도 마스크 의무 착용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마스크를 착용하면 상대방의 입 모양도 읽을 수 없고, 말이 확실히 잘 안 들린다는 점을 느낀다. 청각장애가 없는 비장애인들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스크 속 소리가 웅얼거리고 알아듣기 어려워 가끔 보청기를 끼워도 잘 못 알아듣겠더라. 상대에게 무조건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특히 힘들었던 상황은.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라 대외활동을 하고 인턴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 대외활동 면접은 면접관과 면접자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진행했다. 면접관에게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요구하기엔 (면접장에) 사람이 많아 조심스러웠다. 반대로 부탁을 드리지 않자니 면접관이 한 질문에 동문서답을 할 것 같았다. (다른 대답을 할까 봐)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취업준비를 아예 안 할 수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대처했나.
“한 번은 면접 자기소개 때 말씀을 드렸다.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상대방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면 입 모양을 잘 못 보고, 소리도 잘못들을 수 있다. 제가 질문을 다시 한번 말씀해달라고 부탁하면 면접에 집중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들어서 그런 거니 한 번 더 말씀을 해달라.’ 이런 식으로 부탁하고 면접을 봤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밝혔을 때 취업준비에 영향을 받았는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밝히고 인턴직무에 지원한 적 있다. 면접을 마치고 사측에서 전화가 왔었다. 내가 얼마나 잘 듣는지를 확인하려고 전화를 건 거였단다. 처음 받자마자 ‘아 제가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닌데, 혹시 잘 못 들으세요?’ 이런 식으로 말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다시 밝히자 ‘저희가 추후 다시 확인하고 연락을 드릴게요’라고 말한 후 끝내 합격 연락이 안 왔다.”
-상당히 무례한 대응 아닌가.
“이런 거 보면 확실히(그렇게 느낀다). 오히려 안 뽑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웃음). 기업에서 ‘장애인 우대’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장애인이라고 밝힌 후 지원을 하면 꺼리더라. 기업 측의 인식도 변했으면 한다.”
-매번 면접 때마다 걱정되는 점이 많았을 텐데.
“정말 많이 걱정했고, 지금도 걱정된다. 원래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라 인턴을 해보려 했는데 면접을 볼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하니 마스크 때문에 면접을 잘못 볼까 봐 무섭다. 추후 합격하더라도 회사에서 마스크를 끼고 회의나 일을 할 텐데, 괜히 (대화를) 잘 못 알아들어서 회사에 민폐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부모님께 오죽하면 ‘마스크 벗는 날 취직 준비를 해볼게’라는 말을 했다. 무서우니까.”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