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8일 서울시청 6층 시장실로 돌아오는 데는 3514일이 걸렸다. 2011년 8월 26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10여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오 후보는 2016년 서울 종로, 지난해 서울 광진을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내리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오 후보를 20여년 가까이서 보좌한 한 정치인은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오 후보를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시장직을 건 무상급식 주민투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국민의힘 입당·합당 여부에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를 건 ‘조건부 출마 선언’ 등 정치인으로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선택을 해왔다는 것이다. 오 후보가 자신을 스스로 ‘정치 초딩(초등학생)’이라 밝힌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처음 오 후보의 정치 인생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해 1984년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변호사로서 93년 환경운동연합의 ‘일조권 소송’을 승리로 이끌며 대중적 인기를 구가한다. 2000년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6년 45세 최연소 서울시장에 오르는 등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오 후보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자신의 시장직을 걸며 ‘스스로 물러난 시장’이라는 오명을 쓴다. 이후 두 번의 총선과 2019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도 패배하며 ‘와신상담’의 기간은 길어졌다. 지난 1월 7일 조건부 출마 선언을 내놓았을 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세상에 그런 출마 선언이 어디 있느냐”는 질책까지 들었다. 당 예비경선에선 나경원 전 의원에게 뒤처지며 패색이 짙어갔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이 ‘선명한 보수론’을 앞세우는 사이 오 후보는 꾸준히 중도·무당층을 공략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당원 투표가 포함되는 당 예비경선에선 불리한 선택이었지만 100% 여론조사로 실시된 본 경선에서는 승리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난달 4일 나 전 의원을 꺾고 국민의힘 최종 후보로 선출된 오 후보가 “시민들이 지은 죄를 갚으라는 격려와 함께 회초리를 들어주셨다”며 울먹인 모습은 그의 행보가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당 조직력을 등에 업은 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까지 불거지자 오 후보의 기세에는 ‘바람’이 붙었다. 문재인정부 부동산 실정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오 후보의 행정 경험과 제1야당 국민의힘의 조직력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2일 실시된 야권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를 상대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오 후보는 야권 단일 후보가 된 이후에도 그 기세를 이어갔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곡동 셀프보상’ 의혹을 집중 부각하며 막판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 후보는 “시장이 되면 대선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는 내년 대선에 국한된 선언이라는 게 대세적 시각이다. 내년 6월 열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연임에 도전한 뒤 5년의 시정이 국민에게 호응을 구했을 때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오 후보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얘기다. 오 후보 측근은 “성공만 달려왔다면 지금의 오세훈은 없었을 것”이라며 “10년의 실패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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